#그림책의_사계_영혼을_치유하다 ㅡ모치모치 나무

-사이토 류스케 글 다키다이라 지로 그림김영애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04.
#1
다섯 살 먹은 마메타는 산꼭대기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겁이 많은 마메타는 밤에 뒷간을 갈 때마다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는다. 오두막 앞에 있는 모치모치 나무 가지들이 귀신처럼 달려들 것 같은 무서운 기분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모치모치 나무가 일 년에 한 번 불을 밝히는데, 용기를 가진 아이만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아버지도 봤다면서. 이 말을 들은 마메타도 그 광경을 보기 바라지만 용기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위통으로 고통스러워하자 비로소 겁쟁이 마메타가 나선다. 서리가 내린 밤길을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내려가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온 것이다. 의사 선생님의 등에 업혀 집으로 오는 길. 마메타는 환하게 불을 밝힌 모치모치 나무를 목도한다. 용기 있는 아이만 볼 수 있다던 산신령의 황홀한 축제를 경험한다.
다음날 마메타 덕분에 기운을 차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한다.
“자기를 겁쟁이라고 생각지 마라. 사람은 고운 마음씨만 있으면 해야만 하는 일은 꼭 해내는 법이지. 그걸 보고 다들 놀라는 거야.”
#2
70~80년대만 해도 시골집의 변소는 실외에 있었다. 하여 밤이 이슥할 때 화장실 가는 길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가던 중에 작은 소리라도 날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 일쑤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공포심을 유발한다. 심지어 시골의 푸세식 화장실에 빠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시절이라 화장실 가는 일은 위험천만한 공포 체험이다.
두려움과 공포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감정일 것이다.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역설적으로 두려움을 더 키우는 힘으로 작용했을 테니까. 그 덕분에 인류가 지금껏 생존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문제는 안전 욕구가 지나쳐 공포에 자리를 넘겨준다는 데에 있다.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다시 말해 두려움 때문에 발목을 잡힌 격이다. 한 번 발목을 잡힌 사람은 안다. 주저하고 망설이고 좌절하는 순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크고 작든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인류는 때때로 지혜롭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다의 끝은 절벽이라고 말릴 때, 이를 뿌리치고 대항해를 시작한 사람이 있다. 콜럼버스가 그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떨어지지도 죽지도 않고 무사히 귀환했다. 어디 콜럼버스뿐이랴. 인류의 역사는 두려움에 맞서 싸운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둠과 절망의 안개를 헤치고 시대를 열어간 개척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건재하다.
인류의 역사만 그러한가. 인간의 삶도 똑 같다.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치고 그렇지 않은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헬렌 켈러는 말한다. 모험이 없는 인생은 죽은 삶이라고. 도전과 모험이 곧 용기인 셈이다.
#3
마메타의 겁 없는 질주는 불 켜진 모치모치 나무를 보는 체험으로 이어진다. 만약 그가 행동하지 않았다면 황홀한 광경은 그림의 떡일 것이다. 나무는 매년 때가 되면 불을 밝힐 테지만, 주저하고 망설인다면 그 광경은 언제까지나 상상으로만 남을 것이다. 놀라운 세계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용기의 장점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 보여준다는 점이다. 용기는 발견을 낳는다. 그 결과는 놀라움이고, 할아버지는 그 진리를 알고 있었으리라.
내 삶에 기적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고운 마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볼 일이다. 어찌 아는가. 모치모치 나무가 나에게도 환하게 불을 밝혀줄지. 도종환 시인은 <처음 가는 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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