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화와 수국
자기돌봄에세이
불두화와 수국

며칠 전 호수공원에 있는 전통정원을 찾았다. 호수공원 2주차장에서 나와 공원 쪽으로 길 하나를 건너면 좌우로 펼쳐진 대나무 길이 나온다. 높이 솟은 가느다란 대나무 줄기에서 내뿜는 연초록 기운이 싱그러운 이 길은 짧지만 걸을 만하다. 남도의 대숲길에 들어선 것처럼 여유롭고 한가로운 풍취를 안겨준다. 대나무 길을 지나면 전통정원이 나오고, 그 안에 연지가 있다. 연지에는 겨우내 얼음에 갇혀 지낸 연잎들이 봄을 맞아 색조를 고치며 꽃피울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연지에 다다르기 전에 먼저 환하고 탐스러운 불두화가 눈에 들어왔다. 전통공원의 담장과 기와를 배경으로 우아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써, 하는 놀라운 마음 한 켠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와락 안겨오는 풍경은 늘 감동과 기쁨을 준다. 탐스럽고 풍성하게 꽃핀 불두화를 만나는 일이 그러했다. 한동안 설레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담장 주위를 맴돌며 불두화의 차갑고 희고 부드러운 꽃잎을 어루만졌다. 곱슬곱슬한 꽃무더기에 반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았다. 4월 초파일 전후에 피는 데다 꽃 모양이 부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불두화. 나는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며 1년 만에 만난 불두화와의 재회를 만끽했다.
지나가는 일행 중 한 명이 내 앞을 스쳐가면서 소리쳤다.
“여기 봐, 수국이야!”
“어머, 그러네, 탐스럽네.”
그들 역시 나만큼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목소리 톤이 하늘을 찔렀다.
그들의 말을 엿듣게 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수국이 아니고 불두화라고 말해주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속에서 요동을 쳤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수국처럼 보이시죠?”
그들이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이 꽃은 불두화예요. 부처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죠.”그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네, 하며 짧게 대답했다. 그 반응으로 봐선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하는 마음도 담겨 있지 않았다.
“불두화랜다, 수국이 아니고.”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속으로 괜한 일을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름을 올바로 알려주는 건 괜찮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비슷한 일을 겪었고, 그 때문에 낭패를 보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불두화가 필 무렵이었으니 꼭 이맘때였다. 그때도 전통공원 연지를 보려고 대나무 숲길을 지나다가 불두화와 마주쳤다. 흰 꽃이 무더기로 피어, 탐스럽고 아름다운 정경은 내 발길을 가로막았다. 지금에야 이 꽃이 불두화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만 해도 수국 외에는 다른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나는 수국을 처음 만났다는 기쁨에 설레어 한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멀게, 가깝게 다양한 각도에서 이 평범하지 않는 불두화의 자태를 카메라에 담았다. 득의양양해진 나는 이렇게 찍은 사진을 모임 단톡방에 올렸다. 수국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서.
그 꽃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탄했다. 보기에도 화려하고 탐스러웠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꽃이 수국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이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집 앞에서 자주 보던 꽃이라면서, 내가 올린 꽃은 수국이 아니라 불두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불두화란 이름을 처음 들었다. 수국 밖에 몰랐던 내게 불두화는 상상 밖의 이름이었다. 그때 내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그 즉시 불두화를 검색해보았을 텐데, 당시에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아, 수국이 틀림없다고 우겨댔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 해에 찍었던 수국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내심 수국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쳤던 것이다. 그래서 이의제기한 사람에게 약간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나의 기세에 눌렸는지 그는 한 발 물러났다. 나는 이를 승리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단톡방에서 불두화냐 수국이냐를 두고 진위 논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불두화와 수국의 차이점을 확연히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나는 그 회원이 올린 사진과 설명을 읽어 내려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불두화는 잎의 끝이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데 반해 수국은 깻잎처럼 생겼다. 이것이 불두화와 수국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곁들인 사진은 그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외에도 수국의 꽃은 꽃잎이 4개이고 끝이 뾰족하며 자주색 꽃마다 암술, 수술이 있는데 비해 불두화는 꽃잎이 끝에서 갈라지지 않은 채 붙어 있고 휜색 꽃에는 암술, 수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불두화는 부처님이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는 데 비해 수국은 장마철인 6~7월 사이에 핀다는 것이었다.
내가 올린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앞의 설명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도저히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다음날, 나는 자수하여 광명을 찾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수행하는 사람의 태도일 것 같았다. 자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하여 내가 올린 꽃은 수국이 아니라 불도화가 맞다, 내가 착각했다. 단톡방에 이렇게 사과의 말을 올렸다. 나의 무지를 재빨리 인정한 것이다.
사실, 그때의 일은 나의 무지하고 성급한 마음이 불러온 결과였다. 수국 외에는 달리 생각하지 못한 견고한 고정 틀이 화근이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라도 내 프레임에 갇혀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불두화 곁을 스쳐갔다. 앞서의 일행처럼 그들 역시 불두화를 수국으로 알았다. 1년 전 나와 똑같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불두화든 수국이든 그게 뭐 중요하냐고. 맞다. 딱히 구분을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고, 또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더더욱 누군가가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일러주는 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러고 보면 감옥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진정, 우리가 아는 지식은 모두 믿을만한 것일까.
#자기돌봄에세이
#불두화#수국
#생각의감옥
#김기섭_mindful_drawing
#모든존재가행복하기를
#그림책명상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