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눈을 감아보세요
인생학교에서 그림책 읽기 <눈을 감아보렴!>
가끔 눈을 감아보세요
이 세상에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왠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종종 그런 고약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말이다.
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다. 속을 파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진리처럼 여기는 것 같다. 이들은 어떤 비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듯한 벽을 가지고 있다. 종종 이들에게선 양보라는 미덕이 제거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들은 늘 오해와 갈등을 불러온다. 꼭 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라 해도 갈등이 잦은 건 부인할 수 없다. 당연한 노릇이지만 이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보통의 경우 나는 자리를 파하고 일찍 일어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얼마 전 방구석그림책 모임에서 『눈을 감아 보렴!』이라는 그림책을 소개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그림책을 두 번 읽었다. 한 번 읽어서는 온전히 이해가 덜 되어, 추가적으로 한 번 더 읽었다.
그림책은 형과 동생이 한 대상을 두고 서로 엇갈린 말을 주고받는다. 이러다보니 말싸움이 된다. 동생은 동생대로 형에게 뭔가를 설명해주려 하지만 형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동생은 시계를 두고 ‘몇 시인지 알려주는 물건’이라고 하면, 형은 ‘시계는 심장을 가진 작은 나무상자’라고 말한다. 또 동생이 전구는 ‘빛을 밝혀주는 물건’이라고 설명하면 형은 ‘아니, 전구는 부드럽지만 정말 뜨겁고 조그만 공’이라고 대답한다. 이렇듯 형제는 매번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다.
마침내 참다못한 동생이 폭발한다. 동생이 ‘밤이 되면 온 세상은 잠이 든다’고 하자 형은 그렇지 않다며, ‘밤이 되면 아주 작은 것들이 잠에서 깨어나 우리가 몰랐던 비밀을 알려준다’고 한 것. 동생은 울먹이며 엄마에게 달려가, 자신은 형에게 애써 설명해주려고 하지만 형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엄마가 다정하게 말한다.
“아마 형에게 이유가 있을 거야,”
동생이 그 이유를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눈을 감아보렴.”
처음에 그림책을 읽었을 때, 이 책의 메시지가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다는 점을 전하려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두 번째 읽을 때 형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왜 형의 대답이 동생과 다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형은 동생과 달리 눈으로 보는 대신, 소리로, 감촉으로, 냄새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생은 그런 형을 트집만 잡는다고 불평한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동생이 되곤 하는가. 상대를 돕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말을 마치 진리인냥 주장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본 것이, 내가 아는 지식이 전부라고 강하게 밀어 붙이진 않았는가. 더 나아가 내 말을 믿지 않는 상대에게 틀렸다고 쏘아붙이진 않았는가.
우리의 감각은 완벽하지 않다. 이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여 우리가 분명하다고 말하는 모든 단언들은 지식의 한계, 경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또 뭇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림책에서 동생은 형과 자꾸 말이 틀어지자 엄마에게 일러바친다. 내가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려본다. 형을 이해하라고 할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말해줄까. 아니면 원래 사람은 자기가 본 것을 전부라고 여기는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할 것인가.
여러 번 생각해도 엄마의 해법은 멋지다. 눈을 감아보라는 엄마의 말 속에는, 그렇게 하면 형을, 지금까지의 형의 대답을 자연히 이해하게 될 거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참 현명하고 지혜롭다.
동생이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형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만큼 형을 잘 이해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비록 그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해도 그가 서있는 땅이 어디인지를 알면 이해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
이 날 이후, 나에게 눈을 감아보는 일은, 나 이외의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저마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또 저마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다 옳지도, 그렇다고 옳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도.
불현듯 그간 알게 모르게 내 말에 상처를 입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진심으로 사죄한다. 미안하다, 그리고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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