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친절하기

이 시대 영적 스승으로 꼽히는 달라이 라마는 친절이 자신의 종교라고 했다. 사랑한다는 건 너무 어려우니 그보다 조금 쉬운 친절을 택했다는 얘기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말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온 건 달라이 라마가 매우 인간적이라고 느껴졌고, 차마 그럴 능력조차 없지만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건 얼마나 힘들고 벅찬 일인가.
그때부터 친절은 내 삶의 모토가 되었고, 내가 만나는 이들을 친절하게 대하려고 결심했다. 이런 나의 신념이 통해서인지 적을 만들지 않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이려다 보니 괜한 오해를 받은 적도 더러 있었다. 내남없이 친절하다 보면 시쳇말로 헤프다는 말을 들어, 그나마 몇 줌 안 되는 인기와 호감도 잃어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니 가볍게 넘겼다.
남에게는 친절히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에게 친절한 만큼 나에게 친절했느냐고 물으면 아니올시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에겐 ‘그래도 괜찮아’를 연발했다면 나에겐 지나치게 인색하거나 가혹하게 굴었던 것이다. 내면의 비판자를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부추기고 흠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부정적 경향이 예외 없이 드러난 게 작년 논문을 쓸 때였다.
한 편의 논문을 쓰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지만 소논문과 본논문을 쓰면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글이 잘 써질 때는 즐거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죽을 맛이었다. 논문이란 게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쓰게 되지만, 뜻한 대로 써지면 좋으련만 보통의 경우 틀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신세 한탄하며 논문을 제때 마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과 자괴감이 밀려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이른 나이에 공부를 시작할 것이지, 나이 오십이 넘어 공부하겠다고 나선 게 후회되었고,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다음 학기로 논문 심사를 연기할까 하는 도피하고픈 마음이 활활 타올랐다. 이때의 마음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고충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이지 매번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얘기를 듣고 앉아 있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나를 구제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는 이 빤한 결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달라이 라마가 떠오른 건 신의 계시였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우연이라 해도 그가 말한 친절이 가슴속으로 파고든 건 한 줄기 구원이었다. 그래, 나에게 친절하자. 나에게 연민의 마음을 보내보자. 문득 떠오른 이 친절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없던 내 삶의 리듬을 바꿔 놓았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내가 선택한 방법은 현재로 끊임없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후회하고 불안해 하지 않는 대신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무심하게, 때로는 명랑하게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과거의 집도 미래의 집도 짓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로 돌아오는 마음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회와 자책의 시간을 줄이고, 매번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도록 부단히 마음의 기어를 바꿨다. 부정적인 생각이 폭포수처럼 밀려오면 바로 알아차리고 반응하지 않으려 애썼고, 친절한 마음으로 그 손님들을 반겨 주었다.
이미 지나간 일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에 연연하지 않다 보니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제일 큰 변화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비록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이리저리 꼬이고 헝클어져도 괜찮아, 하고 나를 다독거렸고, 미처 하지 못한 것에 마음을 두지 않게 되면서 마음이 평안해졌다. 하루 이틀 이런 날이 계속되면서 전보다 마음이 상쾌해졌고, 논문 쓰는 속도도 빨라졌다. 마침내 논문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고대하던 졸업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시기는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몰랐다는 것이 참 한심했다. 남에게 하는 만큼 나에게 친절하고, 조금 부족하고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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