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짓과 바보같은짓

매년 수행터에 가지는 못하지만 갈 때마다 닷새 또는 열흘 정도 지내다 온다. 여기서는 휴대폰을 제출해야 해서 디지털 세계와 빠이빠이를 해야 한다. 바깥에서는 휴대폰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테지만 이곳에서는 디지털 금욕이란 이름으로 기꺼이 참고 견딘다. 내가 나에게 내리는 형벌이지만, 그 덕분에 온전히 나의 내면에 둥지를 틀고 반조의 시간을 갖는다.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명상수련을 하다보면 온갖 것이 다 올라온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은 물론이고 마음 속 깊은 우물에 담아두었던 일들이 막힌 하수구에서 물이 솟구쳐 오르듯 모습을 드러낸다. 이른바 미해결과제가 의식의 전경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로 기억되는데, 수행터에 자리를 잡은 지 채 이틀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아들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왜, 어떤 연유로 아들이 떠올랐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아들과 나 사이에 해결되지 못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좌선을 할 때도, 경행을 할 때도 아들의 얼굴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혼자 방안에 앉아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올라오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대체 이건 뭐지?’
이런 적이 없었으므로 놀라운 마음이 들었지만 떠오르는 대로 따라가 보았다.
우리 집안은 아들이 귀했다. 큰형이 딸 둘에 아들 하나, 작은형은 딸 셋, 남동생 또한 딸 둘을 두었다. 내가 아들, 딸을 하나씩 두었으니, 열 명의 자식 중 손자는 둘 밖에 없다. 당연히 귀할 수밖에 없었고, 부모님은 자식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두지 못한 것을 늘 애석해했다.
그렇다보니 은연중 아들을 제대로 키워보려는 의욕이 생겼고, 또 첫아이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면서 되지도 않은 욕심을 부렸다. 아들이 가진 성향을 주의 깊게 살피며 그에 걸맞는 훈육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을 정해놓고 거기에 따르도록 했다. 지금 같아선 아이와 공명하면서 길렀을 테지만 초보아빠인 당시로서는 엄격한 방식 외에는 다른 걸 생각하지 못했다. 하여 아이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훈육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건 곧 드러났다.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였다. 아들이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똑같은 실수를 여러 번 저질렀다. 나는 바로잡아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따끔하게 아들을 혼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아들은 눈물을 쏟으며 통곡했다.
“아빠, 저는 바본가 봐요. 저는 바보예요.”
아들은 서글프게 울면서 자신을 탓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 말의 어떤 부분이 아들을 격동시켰던 모양인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평소에 아들이 이렇게까지 행동한 적이 없어서, 뭔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그렇다 해도 넌 바보는 아니야.”
그렇게 위로해주었지만 아들은 자신이 말한 걸 사실인 양 믿고 싶어 했다.
아뿔싸, 바보와 바보 같은 짓은 다르다는 걸 가르치지 않았구나, 내가 너무 심했구나. 나의 잦은 꾸짖음이 아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이 아닌 자기 자신을 바보로 여기게끔 만들었구나 하는 후회막급한 심정이 되었다. 그때 나는 아들을 달리 위로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들에 대한 옛날 기억이 떠오르자 수행터에 앉아 있는 일이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있는 것처럼 따가웠다. 아들에게 진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에겐 자랑할 만한 좋은 점이 많았음에도 그런 장점은 보지 않고 잘못하고 실수한 일만 지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왜 그랬는지를 차분히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틈조차 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또 아들에게 저지른 실수가 그때뿐이었을까를 생각하자 얼굴이 붉어졌다. 성숙하지 못한, 덜 떨어진 아빠를 만나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데까지 마음이 닿자 더 착잡해졌다.
수행터를 나가는 즉시 이제 스물 중반을 넘은 아들에게 정식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안아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 해 수행터에선 그 깨달음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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