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
편지글로만 되어 있는 좋은 그림책을 여러 권 알고 있지만, 얼마 전 읽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라는 그림책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 나서며 매일 한 편씩 써내려간 소박한 편지는 간절하고 애틋하여, 오랜만에 이메일이 줄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야기는 북쪽에 사는 곰이 남쪽으로 떠난 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쫓아간다. 곰은 화산을 만나 발을 데고, 사람들의 싸움을 피하려다가 길을 잃고, 또 바다를 건너야 하는 등의 시련을 겪는다. 그런 고행 속에서도 짝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곰으로 하여금 모든 고초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어렵사리 곰은 새가 있는 남쪽에 도착하지만 새를 만나지 못한다. 아니 만날 수가 없다. 새도 곰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북쪽으로 떠나 서로 길이 엇갈렸던 것이다. 게다가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알자 곰은 몹시 실망한다. 그런 곰을 위로하기 위해 새의 친구들은 큰 둥지를 만들고, 그 둥지에 곰을 태운 채 북쪽으로 날아간다. 이들의 우정으로 곰과 새는 감격적인 포옹을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결말은 익숙하고 낡은 문법이지만 이 서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 역시 감동적이다. 새를 만나려는 곰의 확고한 결심이 여행 중에 만나는 동물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이끌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 책에서의 압권은 새의 친구들이 곰을 둥지에 태운 채 날아가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한해를 떠올려보면, 우리도 곰처럼 저마다의 새를 찾아 길을 나섰을 게 분명하다. 그 새는 사람마다 달라서, 누군가는 진학, 승진, 부자 되기 등등 자신이 세운 인생 목표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아의 신화를 찾는 여정일 수도 있겠다. 한편 여행 중에 만나는 수많은 난관들은 누군가에겐 눈물과 좌절을 안겨줄 수도 있고, 또 그것을 계기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험이 되었든 간에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음미할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의 영성은 깊어질 게 틀림없다.
김사인 시인은 자신의 시 <조용한 일>에서, 철 늦은 낙엽 하나가 슬며시 곁에 내리고, 말없이 그냥 있는 것에서 ‘고맙다 / 실로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라고 노래한다. 자신 옆에 내려앉은 낙엽에게조차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시인의 시선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감사하는 일에 서툰 나같은 사람은 백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를 테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지금껏 이렇게 무탈하게 살아온 건 다 이런 낙엽과 같은 일들이 쌓여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각박한 세상에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겠는가.

올 한해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분들 중에서 한 사람만을 꼽으라면 내 논문지도교수이다. 통합심신치유학 분야의 석학이신 내 스승 덕분에 나는 논문을 쓰고 졸업할 수 있었으니까.
그 분은 뜻하지 않게 논문지도를 맡게 되었는데, 그 바람에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분의 까다롭고 엄격한 눈은 제자들의 논문이 성에 차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인정사정없이 퇴짜를 놓았다. 제자들은 처음부터 논문을 다시 쓰거나 한 학기 연기라는 거역할 수 없는 말을 들어야 했다. 자연히 제자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논문 심사 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다른 심사 교수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때론 애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 생에서 논문 써 졸업하기엔 글러먹었다고 투덜거리던 제자들은 그런 스승의 모습에 놀라고 감동을 받았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분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논문 통과는 어려웠을 테니까. 모르긴 해도 내년, 내후년에도 논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마음을 썩히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신축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곁에 있는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보자.
#모든존재가행복하기를
#명상인류를위하여
#수행이필요해
#내곁에있는고마운사람들
#세상끝에있는너에게
#김사인_조용한일
#김기섭
#참새방앗간
#그림책명상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