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 필요해-명상인류를 위하여

모든 순간이 기쁨의 순간

통합인문치유자 2022. 1. 6. 15:48


며칠 전, 한해의 마지막 날에 무슨 요리를 할까 고민하다가 전에 선물 받은 전복이 떠올랐다. 전복버터구이를 해먹으려고 천연 버터를 사놓은 걸 알았지만 연말을 분주히 보내느라 미루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처음 해보는 전복버터구이에 도전을 했다. 꽁꽁 언 냉동 전복을 꺼내 해동을 하고 깨끗이 손질한 뒤에 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마늘을 넣었다. 버터가 팬 가득 녹았을 때 전복을 하나둘 투하했다. 버터에 이미 간이 돼 있는 터라 전복을 위아래로 뒤집어가며 구웠다.

다 익은 것 같아 한 입 먹어본 전복의 맛은 고소하고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 녹는 기분이었다. 가족 모두 이 놀랍고 생소한 요리에 감탄하며 먹어보기를 권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이 음식에 곁들인 와인 또한 제법 궁합이 잘 맞는다. 장담할 순 없지만 전복버터구이는 2021년 신축년 마지막 날을 추억하는 음식으로 훗날 머리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집에서 요리를 즐겨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고 아침저녁으로 먹는 찌개나 국 따위 또는 오랜만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그들이 좋아하는 닭볶음탕, 갈비찜 정도를 내놓는 수준이다. 물론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레시피가 없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자칭 셰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아이들이 내가 한 음식을 아빠표 요리로 명명해주고 자꾸 해달라며 은근히 밀어주는 덕분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요리는 즐겁고 또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볼 때마다 더 신나서 하게 된다.

이럴 때는 셰프로서의 위엄과 권위를 한껏 누리는 호사를 부린다. 권리라고 해봤자 식사를 하고 난 뒤의 설거지를 면제 받은 혜택이 전부이지만, 나 스스로 셰프라면 이 정도 대접쯤은 받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가족들도 이를 묵인하여 최근까지 설거지 면제 혜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다들 바쁘게 지내다보니 그것조차 써 먹지 못하고 자진반납할 때가 있으니 그게 문제라면 문제다.

틱낫한 스님은 설거지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그릇과 접시를 깨끗이 닦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설거지이고 또 하나는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이다. 틱낫한 스님이 권하는 건 두 번째 방법인데,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란 "설거지를 할 때에 자기가 설거지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설거지를 한 뒤 차를 마셔야겠다, 텔레비전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설거지에만 마음을 쏟는 방법이다.

"내 숨을 따라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과 내 생각과 내 행동을 죄다 알아차림으로써 완전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할 때의 효과로 "물결 위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병처럼 생각 없이 떠밀려 다니는" 일이 없어진다고 강조한다.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할 때 망념, 망상에 사로잡혀 시달리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살고자 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비단 이런 알아차림의 삶의 방식을 설거지할 때만 적용하라는 건 아니다. 무슨 일을 하든 마음챙김적으로 할 때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다.

임인년 나의 새해 첫 다짐으로 일상의 알아차림을 좀 더 확대하자, 로 정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불평하는 대신 온전히 그 순간에 머물면서, 알아차림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을 테지만 경험하는 모든 순간을 기쁨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아마도 세프로서의 권위를 내려놓고 더 기쁜 마음으로 설거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이필요해
#모든순간이기쁨의순간
#명상인류를위하여
#버터전복구이
#셰프
#틱낫한
#설거지를위한설거지
#알아차림
#이순간_이멋진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