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인색할까?

우리 집에 길고양이 레몬이가 온 지도 벌써 오 개월이 다 되어간다. 어리고 야리야리하던 녀석이 제법 체격도 커지고 몸무게도 늘어, 거실을 활보할 때는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의젓하다. 창문 밖 세상에 관심이 많은 녀석을 안고 구경을 나갈라치면 묵직한 무게감에 오래 안고 있으면 팔이 아플 정도다.
처음 올 때와 마찬가지로 녀석은 여전히 말썽꾸러기다. 올라갈 수 없다고 본 책장 꼭대기의 책을 발로 치워가며 오르고, 경사지고 미끄러운 부엌의 렌지 후드까지 정복을 마친 상태다. 그 아래 높이 급인 에어컨, 스타일러는 이미 가벼운 등반 코스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녀석은 가족들이 식사를 할 때는 자기 밥을 일찍 먹어치운 후에 전자렌지 위로 뛰어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아, 가족들이 어떻게 숟가락질을 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며 감시한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이러한 감시활동을 계속하다가 심드렁해지면 녀석은 베란다에 있는 화초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행운목과 산세베리아를 껴안거나 발을 올려놓고 할퀴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는 화분을 밀어트려 와장창 작살을 내기도 한다. 그 소리에 놀라 짐짓 동그랗게 눈을 뜨지만 곧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구석으로 사라진다.
이 같은 레몬이의 횡포는 끝이 없다. 몇 가지만 더 들면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 올라가 먹통을 만들고, 비닐 가죽으로 된 말랑말랑한 자전거 안장, 적외선 족욕기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후벼 파서 볼품없이 만들어버리고, 쌓아 놓은 책을 타고 넘어가면서 무너뜨려 매번 다시 쌓게 만든다. 여전히 밥 때가 되면 제일 만만하고 자비로운 사람을 골라 아주 얄미울 정도 물면서 자신의 밥그릇을 채워주기를 재촉하고, 밤이든 새벽이든 인기척이 느껴지면 귀신같이 알고 나와 기다란 몸뚱이로 발목을 감아 돌면서 간식을 내놓으라고 시위를 해댄다.
고맙게도 녀석이 조용할 적이 있는데 잠잘 때와 밥 먹을 때이다. 특히 밥 먹을 때에는 머리를 쓰다듬어도 먹는 것에 집중하느라 개의치 않다가 의식을 마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돌려 물려고 달려든다.
딸아이가 녀석의 이런 못된 버릇을 고쳐주려고 야단을 세게 쳐보지만, 회복탄력성이 탁월하여 금세 똑같은 짓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되풀이한다. 한마디로 구제불능 수준이다.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말을 받아들이지만 가족들 모두 레몬이에게 번번이 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는 건 피할 수가 없다. 당장 혼이 나도 금세 잊어버리는 태생적 특성을 어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말썽쟁이와 한 집안에 살면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신기한 노릇이다. 고양이 털이 날리는 걸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던 아내나 장모님도 레몬이의 기행을 두고 화를 내거나 진저리치지 않고 가볍게 넘기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대한 태도 변화가 경의로울 따름이다. 두 사람의 태도와 행동 변화를 가져온 비밀은 무엇일까.
형식 없는 수시 인터뷰와 관찰을 해본 결과, 놀라운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양이는 원래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사람이라면 야단을 치고 바른 길을 알려주어 바로잡으려 하겠지만, 고양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다 말이 안 통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기행이 고양이의 생태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자연스러운 짓거리라는 걸 이해하고 수용한 것이다. 때문에 레몬이에게 형사책임을 묻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의지도 방법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관대함과 인자함을 보이는 비결이었다.
이를테면 고양이는 원래 야행성이어서 밤 11시 이후에 활동력이 왕성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냥구역 생활구역을 나누는 습성이 있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야단을 맞아도 3초 안에 혼내지 않으면 새카맣게 모르기에 같은 짓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서, 쌓아놓은 책을 무너뜨려도 오케이, 아끼던 화분을 산산조각을 내도 오케이, 고가의 실내 자전거를 망가뜨려 당근마켓에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도(물론 속상하긴 해도) 오케이 하며 허용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레몬이는 치외법권 지역에 살면서 면책 특권이 주어진 특이한,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고양이를 길러본 사람이라면 모두 인정할 것이다. 그러니 이보다 부러운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고양이만 이런 특유의 습성을 가진 건 아닐 것이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똑같은 사람이라 해도 결이 다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다르고 내향, 외향이 다르다. 그뿐인가. 사는 지역도 피부색도 종교, 문화도 다르고 가치관, 사고방식이 다 다르다. 또 공통적으로 웬만한 감동이 없는 한 잘 바뀌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심한 경우 철천지 원수가 될까. 고양이에 관해선 톨레랑스를 발휘하면서 같은 사람에겐 왜 그렇지 하지 못할까. 우리는 왜 동료나 가족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에는 인색할까.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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