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 필요해-명상인류를 위하여

다정한 말은 돈이 들지 않는다 

통합인문치유자 2022. 2. 24. 09:35

몇 년째 같이 살고 있는 장모님은 말수가 적다. 원래부터 말이 없는 분이셨지만, 우리 집에 온 뒤로는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으니 이러다가 치매가 빨리 오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 기껏 나누는 대화도 아침 식사 때 잠깐 날씨나 뉴스 얘기 정도 나누는 게 고작이고, 온종일 방안에서 혼자 틀어박혀 지내신다.

밤에는 텔레비전을 끄면 무섭다며 24시간 켠 상태로 두시려 하고, 식사하러 거실을 가로질러 나오는 것 외에는 침대와 흔들의자, 화장실이 주된 동선이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계셔서 한 달에 한 번 가던 병원도 코로나 덕분에 발길이 끊겼다. 게다가 지난 번 무릎 수술을 한 게 오히려 걷기를 더 주저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리를 끌면서 걷는다. 자칫 걷다가 넘어져 다리나 엉덩이 고관절을 다치면 민폐를 끼칠까봐 외출도 삼간다. 어릴 적부터 키운 손녀딸이 간혹 말동무도 하고 머리 염색을 해드리지만 그때를 빼면 절대 고독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딸이나 사위가 싹싹하고 상냥하여 쓸데없는 말이라도 붙여가며 고독의 시간을 줄여드리면 좋으련만 그걸 바라는 건 기대난망이다. 정작 본인조차도 시시껍절한 얘기를 안 하기로 유명하지만 또 그런 얘기를 한다 해도 맞장구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이래저래 소가 닭 쳐다보듯 그렇게 지낸다.

예전에 한 번 아파트 안에 있는 경로당에게 가보시라고 권해보았지만 돌아온 건 퉁명스런 대답뿐이었다.

“늙은이들만 있는데 가면 뭘 해. 아들 자랑, 며느리 흉만 보는데. 난 그런 거 싫어.”

이렇게 단호하게 말을 하니 더 이상 경로당에 가서 친구 좀 사귀어보라는 말을 꺼내기도 민망하여 이후론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그래도 안심이 되는 건 이 분의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호기심이다. 이 왕성한 호기심이 내심 반가운 이유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점 때문이다. 택배가 오거나 아침저녁으로 올라오는 반찬을 보면 이건 뭐고 저건 뭐냐며 묻기를 좋아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그래서 대답을 해드리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염려스러운 건 물었던 걸 또 묻는다는 거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렇겠지만 전에 분명히 말한 걸 잊고 다시 물을 땐 가족들 모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전에 드셨던 음식도 안 먹었다고 하고, 전에 짜다고 했던 음식 맛을 싱겁다고도 한다. 점심을 드셔놓고도 그런 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한다. 도무지 헷갈려서 몇 번 말씀드렸어요, 점심 드셨어요, 라고 말씀드려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뿔싸.

이럴 때마다 전에 아이들 친할머니를 간병하면서 느낀 걸 복기하게 된다. 한해 한해를 거듭할수록 시나브로 기력이 쇠해가는 걸 눈으로 목격한 바가 있어서다. 아이들 친할머니는 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침저녁으로 참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러다 힘이 부치자 지팡이를 짚었고 그 다음엔 유모차를 끌고 운동을 했다. 나중에는 이조차도 어려워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기력이 떨어지면서 기억도 희미해져 어떤 때는 아들인 나를 아버지로 착각하기도 하고, 문득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내 이름을 묻기도 했다.

사람이 병들고 기억이 희미해지는 건 노화현상 탓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정작 내 피붙이 살붙이에게 찾아오면 마음이 답답한 건 숨길 수 없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늦출 수 있다 해도 몸은 자연의 이치와 꼭 닮은지라 피할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마음은 짠하다. 이때 자식으로서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것말고는.

하여 얼마 전부터 장모님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침인사를 하기로 했다. 전에는 아침상을 차려놓고 “식사하세요!”라고 말했다면 그 말 앞에 다정한 말을 하나 더 붙이기로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식사하세요!”라고. 살아갈 날을 힘차게 시작하시기를 바라면서. 그러면 장모님은 입가에 쓰윽 미소를 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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