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 필요해-명상인류를 위하여

마음에 속지 않으려면

통합인문치유자 2022. 4. 1. 11:57

#수행이필요해


사람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떨 때는 묵직한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단단하다가도 또 어떨 때는 간사하다싶을 정도로 표변한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내 마음 나도 몰라’할 때가 자주 있으니 요상한 게 마음이다. 원숭이가 이 나무 저 나무 오르락내리락하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처럼 이 마음 역시 변화무쌍하여 가만히 지켜보지 않으면 매번 속을 수밖에 없다. 속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번번이 고배를 드는 걸 보면 내가 보기에도 참 우습다. 그런 쓰라린  경험을 자주 하지만 그중에서 적나라하게 이를 목격한 건 몇 년 전 KBS 파업 때일 것이다.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요란한 장난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우리 집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하루 종일 음악이 집안에 차고 넘친다. 수십 년 동안 KBS라디오 클래식FM 단골 애청자로 살아온 까닭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좋다. 아침에 듣는 음악은 그야말로 축복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진행자의 매끄러운 진행, 그가 들려주는 아름답고 생기 있는 음악은 신성한 선물처럼 고맙기 그지없다. 한 번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아침 7시 진행자에게 감사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살면서 감사 문자를 보낸 건 그때가 처음이다.
 
저녁의 음악은 저녁대로 고혹적이다. 멜랑꼬리하고 차분한 음악은 깊은 휴식을 안겨주기에  바랄 게 없다. 분주한 하루를 정리하는데 이만한 힐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값지다. 마치 음악을 듣는 내 마음이 폭신한 스폰지가 되어 낮 동안 잃어버린 부드러움을 되찾아준다.

이렇듯 아침저녁뿐 아니라 온종일 그렇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거실을 독점하고 집안을 가득 채운다.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하루는 음악을 듣던 나에게 아들이 묻는다. 사람이 있을 때는 그렇다 쳐도 없는 시간에도 음악을 켜 놓느냐고. 난 망설임 없이 답했다. 화초도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아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픽 웃고 만다.
 
그런데 KBS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이런 즐거움이 한순간에 막을 내렸다. 방송이 파행을 거듭하면서 재방송 안내 멘트가 나오고 재탕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아침에 듣던 방송이 저녁에 나오고 몇 달 전 들었던 방송이 재방송되기 일쑤였다.  계절과 다른 멘트가 나올 때는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중에는 객원 진행자의 프로그램마저 재방송이 되기에 이르렀을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파업을 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방송 파행이 길어지면서 왠지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내 마음이 시끄러워서인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전과 똑같은 음악인데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마치 생기 잃은 화초처럼 시들시들했다. 그렇게 몇 달이 우울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이 달라졌다. 갑자기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윤기가 느껴지고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게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예의 진행자가 제 자리로 돌아오면서 음악에서 온기가 전해왔다. 이걸 생방송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놀라운 건 이 뿐만이 아니었다. 선곡 하나하나 진행자 멘트 하나하나가 마치 봄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재방송할 때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새뜻하고 신선한 기운이 음악에 가득 들어 있었다. 그간의 우중충함과 시들시들함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음악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음악 하나하나가 신비롭고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웠다. 다분히 녹화된 재탕 방송에서 생방송으로 바뀐 덕분이겠지만 마음에 와 닿는 섬세한 결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음악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음악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난 그때 깨달았다. 마음이란 참 요상하다는 것을. 그리고 또다시 속고 있었다. 얼마나 수행을 해야 이 마음에 속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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