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삶을 발견하는 방법
#수행이필요해

새벽에 산을 오를 때였다. 언제부터인가 산으로 가는 아스팔트 길 위로 물로 만든 커다란 하트 모양이 보였다. 산의 입구에 있는 절까지 약 200미터에 이르는 길 위에 열 개가 넘는 하트가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하트 모양을 볼 때마다 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워터하트를 그리는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어느 날 또다시 산에 오르는 데 예의 하트 모양이 길 위쪽으로 나 있었다. 가만히 보니 멀리서 한 사람이 주전자를 이리저리 흔드는 게 보였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
“혹시 하트 모양을 그리는 분이세요?”
“네.” 그가 쑥스럽게 말했다.
“아침마다 선생님이 그려주시는 하트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별거 아닌걸요. 그냥 하트 모양을 그리면서 기도한 거예요. 여기에 오시는 분들의 하루가 사랑으로 넘쳤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그의 의도는 소박했지만 워터 하트를 보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하루는 남달랐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김미라 교수가 쓴 책 《당신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김 교수는 로고테라피를 만든 빅터 프랭클의 어록을 풀이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하는 세 가지 길 중에서 창조적 가치의 한 예로 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창조적 가치를 통한 의미의 발견은 세상에 내가 무언가를 줌으로써, 즉 뭔가를 행함(doing)으로써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일이란 꼭 전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일산역에서 10분 남짓 걸어야 한다. 그 날은 시내에 나갔다가 일산역에 내리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이 있다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그 날 따라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마침 집에 전화를 받을 사람도 없었다. 산성비다 뭐다 해서 비 맞기가 거북하여 역사 앞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전보다 세차게 내렸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는 무료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이까짓 것 하며 무작정 집까지 내달리기에는 빗줄기가 거셌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기차는 서고 가고를 반복하고, 우산 있는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역사를 빠져나갔다. 나처럼 우산을 챙기지 못한 사람은 집에 전화를 거는 등 부산을 떨었다.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들이 우산을 가지고 나온 가족과 하나둘 떠나가고 청승맞게 비를 바라보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다고 판단한 나는 빗발이 가늘어진 틈을 타 역사를 빠져나왔다. 여전히 비는 내렸지만 아까보다는 세기가 약해졌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한참을 그렇게 뛰니 숨이 턱에 차고 가슴이 뻐근했다. 갑작스런 뜀박질에 심장이 거칠게 반응했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내리고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걸었다.
집을 약 100미터쯤 남겨놓았을 때였다. 우산을 받쳐 든 장년의 부부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부부는 하나의 우산을 썼고, 남자의 손엔 우산이 들려 있었다. 연신 이야기를 하며 걸어오던 그들이 우산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나를 발견했고, 나도 똑같이 그들을 보았다. 남자가 불쑥 나에게 물었다.
“우산 빌려드릴까요?”
남자는 쥐고 있던 우산을 들어보였다. 나는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인일지도 모를 테지만 나는 그가 초면이었다. 그런 나에게 우산을 빌려주겠다는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집도 다 와 가는 데다 무엇보다 빌린 우산을 되돌려줄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는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제스처를 해보이며 재차 의사를 표시했지만 나는 고사했다. 대신 큰 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외쳤다. 평소보다 큰 소리여서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부부는 알았다는 듯이 역 쪽으로 향했고, 한동안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가슴 한 켠에선 잔잔한 파도가 일렁였다.
그들은 모르리라.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내 가슴에서 ‘이래서 세상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또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삶과 그들이 우산 선물을 주려고 했던 사람이 그 일로 커다란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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