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새 한 마리도 살지 않는 새장의 얼굴은 늘 시무룩하다. 새가 없는 새장이란 의미도 없을뿐더러 흥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참다못한 새장은 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처음 만난 새는 제비. 새장은 상기된 얼굴로 제비를 꼬신다. 새장엔 물과 모이가 충분하고 따뜻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며. 제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둥지를 짓고 마음껏 날아다니며 세상구경하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이어서 새장은 참새를 만나지만 제비와 비슷한 이유로 고배를 마신다.
새장은 나이팅게일을 만나 새장의 필요성을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의 비웃음만 사고 만다. “좁아터진 새장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겠어?” 이후 공작과 늙은 올빼미에게 찾아가 외쳐보지만 그 누구도 자유롭고 느긋한 지금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새장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올빼미는 “새장에 갇혀 사십 년을 사는 것보다 한 시간을 살아도 단단한 나뭇가지에서 사는 게 나아”라며 새장을 꾸짖는다.
새장은 새장 안에서도 행복하게 날아다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며 강변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새장은 눈물을 흘린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올빼미가 위로 섞인 충고를 한다. 그 말을 듣고 새장은 다음 날이 밝자 새장의 문을 떼어내 멀리 던져버린다. 그리고 새장 안에 맛난 음식과 물을 채우고 새들을 기다린다.
새장의 달라진 태도에도 새들은 새장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새장은 기다린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되자 변화가 일어난다. 배고픈 새들이 하나둘 새장을 찾아온다. 이듬해에는 더 많은 새들이 문 없는 새장을 찾아 날아든다. 새장은 더 이상 새를 찾아다니지 않게 된다.
로둘라 파파가 글을 쓰고 셀리야 쇼프레가 그림을 그린 《새를 사랑한 새장이야기》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이 그림책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아무리 새장이 제공하는 맑은 물과 모이, 철창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숙소를 준다고 해도 마음대로 다니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과 비견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올빼미의 말은 새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네가 어떤 새에게 물어보더라도 새장 안에서 살고 싶어 하는 새는 없을 거야. 가끔 두렵고 먹이가 없거나 추위에 떨더라도 새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자유야. 때때로 아주 추운 겨울이나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을 지내더라도 말이야.”
그러나 이 그림책은 자유의 추구보다 새장의 놀라운 개심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본다. 처음에 새장은 올빼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새장 안에서 새들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움켜쥐고 있다. 새장의 존재 의미가 그럴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새장은 늙은 올빼미에게 의사를 불러줄 수 있다며 호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올빼미를 비롯한 모든 새들이 보인 반응에 저항한다.
나중에 올빼미의 충고를 듣고 새장은 현실과 다투는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는다. 그림책에서는 올빼미가 어떤 충고를 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다음날 새장이 문을 멀리 내다버리고, 물과 모이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으로 봐선, 새장이 자신이 애착하는 걸 내려놓게 되었다는 걸 알 게 된다.
생각해보라. 새장의 문은 새장의 기능 중 가장 핵심이다. 문을 열어두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아예 내다버렸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자신의 존재, 자신의 기능을 해체하는 결단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문이 없는 새장은 새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과 진배없으니 말이다.
새들은 금방 날아들지 않았다. 새장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새장은 실망하지 않고 맑은 물과 모이를 준비하고 계절이 바뀌도록 새들을 끈기 있게 기다린다. 새장으로선 이 시간이 인고의 세월이었으리라.
결국 그 시간은 허송세월로 끝나지 않는다. 새들이 찾아옴으로써 새장의 인내와 결단은 보상을 받는다. 비록 문이 없는 새장이지만 새장은 새들이 찾아오는 것으로 춤을 추고 싶었을 것이다. 새장이 바란 것은 새를 가두는 기능에 있지 않고 새들과 교감하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새장 개념을 뒤엎는 발상의 전환은 새장의 성숙한 의식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는지를 잊을 때 고통이 찾아온다. 본질은 때로 가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려져 있는 것이 언젠가 드러날 때 우리는 신선한 감동을 받는다. 새를 진정으로 사랑한 새장 이야기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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