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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시대, 책읽기가 필요한 이유

통합인문치유자 2022. 7. 15. 14:58


#1
초등학교(당시에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학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이 학급문고를 만든다면서 책 한 권씩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왜냐고요, 가져갈 책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읽을 책도 없는데 학교에 가져갈 여분의 책이란 가당치도 않았던 거죠.

며칠 동안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선생님 말을 어기고 안 가져갈 수도 없었으니 마음이 타들어 갔습니다. 부모님에게 책 사게 돈을 달라고 할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큰 농사를 지었다지만 자잘한 돈이라도 쓰려면 밭에서 나는 시금치나 열무 등속을 묶어 시장에 내다팔아야 몇 푼의 돈을 만질 수 있었으니까요. 그 돈은 또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형과 누이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속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책값을 달라는 말을 감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간 끌탕을 하다가 형이 방학숙제 하려고 읽던 초록빛 나는 전기물 한 권을 그것도 형 몰래 가방에 넣었습니다. 다행히 형은 자신의 책이 없어진 걸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반 아이들은 저하고 달랐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책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찬란했습니다. 아마도 새로 산 게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아이의 책은 하드카버에다가 묵직하고 고급스러웠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책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가져온 책을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가져온 책으로 학급문고의 책장이 채워지자,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빌려가도 좋다고 선언했습니다. 나는 예의 주시하고 있던 그 아이의 하드커버 책을 제일 먼저 집어 들었습니다. 나와 비교조차 되지 않던 그 아이의 책이 탐이 났던 겁니다. 내용은 뒷전이었습니다. 나중에 집에서 펴보니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 였습니다.

저는 곧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이란 게 이렇게 재미난 물건인지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놀라움을 비유하자면 태풍급이었습니다. 달타냥과 삼총사들의 우정과 활약, 그들이 펼치는 빛나는 용기는 당시 정의감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밤새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고, 햐얗게 밤을 지새웠습니다.

이때의 전율과 서스펜스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삼총사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여러 차례 나왔지만 한 번도 만족하지 않은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원작에 비해 싱거웠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저는 책의 마력에 영혼을 빼앗겼고, 닥치는 대로 읽어댔습니다. 책의 세계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도서평론가 이권우가 이번에 새로 펴낸 《호모부커스》 개정증보판 속에는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제 어린시절과 빼닮았습니다. 집안 사정상 책을 살 형편이 안 됐던 저자의 어린 시절의 회상이 그래서 반갑고 짠했습니다.

#2
14년 전에 나온 저자의 《호모부커스》를 읽고 커다란 흥미를 느꼈습니다. 당시 일선 학교와 도서관에서 독서토론 강의를 하고 있던 터라 책을 왜 읽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 책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책읽기 책과 달리 당시 저자의 아이디어와 주장이 저를 흥기시켰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번에 새로 낸 개정증보판도 흥미로웠습니다. 전의 내용은 살리면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유난히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쓰기’ 부분이었습니다. 늘 새롭게, 다르게 보기를 강조하던 저자답게 책읽기와 ‘쓰기’를 연계하여 강조한 점이 새뜻했습니다.

저자의 요지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제는 책을 읽으려고 읽지 말고 쓰기 위해 읽자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책읽기의 관점을 바꿔 보자는 제안입니다. 그동안 독서가 읽는 이를 단순히 ‘의미의 수용자’로 제한했다면 이제는 ‘의미의 창조자’로 바꾸자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가뜩이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없지 않지만 “쓰는 사람만이 읽는 사람이 된다는 믿음을 버릴 생각이 없다”며 밀어붙입니다.

제 경험에 미루어 봐도 글을 쓰려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기란 매우 힘듭니다. 쓰기는 곧 읽기이고 읽기는 곧 쓰기로 통하는 법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다만 글쓰기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저항을 어떻게 해소할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할 겁니다.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속상해 합니다. 그동안 그가 펼친 헌신의 길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개정판에는 그에 대한 처절한 반성도 담겨 있는데요, 지금까지 책읽기 운동을 실패했다고 결론짓자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 말 속엔 그가 책읽기 운동에 바친 세월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할 때 원점에서 새로운 책읽기 방식을 모색할 수 있어서입니다.

사실, 책 읽기는 불편하고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책읽기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책읽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실용적인 정보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게 해주고, 독자의 영혼을 치유해주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호소합니다. 책읽기는 공감을 전제로 무한경쟁 시대에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통로라고 말이죠.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하는 이 ‘오징어게임’의 시대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는 없잖은가!” 그의 절절한 호소가 우리 모두의 책무처럼 느껴지는 건 저뿐이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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