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명복을 빕니다

며칠 전 쉴 새 없이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무섭다고 느낄 정도로 세찬 비였습니다. 호수공원은 도로마다 흙으로 뒤덮였습니다. 사방에서 한꺼번에 몰려온 빗물이 넘쳐흘렀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호수공원은 몸살을 앓았을 겁니다.
이번 폭우로 인한 상처는 도로만이 아닙니다. 미물이지만 지렁이도 수난을 당했습니다. 차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렁이의 사체가 시멘트 도로 위로 즐비했습니다. 햇빛에 바싹 마른 채로 도로 위에서 박제가 된 겁니다. 붉다 못해 검게 그을린 모습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십중팔구 지난 폭우로 땅속으로 물이 스며들자 숨을 쉬기 위해 기어 나왔다가 참변을 당한 걸 겁니다.
원래 지렁이는 습한 곳을 좋아하지만 비는 싫어합니다. 비가 오면 지렁이가 사는 땅속은 금세 물이 차오르고, 지렁이는 온몸으로 숨을 쉬기 때문에 굴이 물에 잠기면 숨을 쉬지 못해 죽고 맙니다. 이 대참사에서 용케 살아남아 지상으로 올라오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이 녀석들은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쉴 테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녹록치 않습니다. 이들이 가진 취약점이 운명을 갈라놓습니다.
습한 곳을 찾는 지렁이의 특성상 비가 오면 자신이 기어가는 곳이 땅속인지 지상인지 구분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방향을 잃게 되고, 길을 잘못 든, 운이 없는 녀석들은 도로로 나오게 됩니다. 시멘트 도로로 기어 온 지렁이를 맞는 건 빗물보다 더 끔찍합니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은 이들의 숨통을 조입니다.
이때가 지렁이에겐 최악의 상황입니다. 자신이 살던 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느린 걸음은 생존에 도움이 안 됩니다. 대부분 땅으로 돌아가려다가 여정을 마치지 못한 채 쓰러집니다. 서서히 굳어진 상태로 직사광선의 먹이가 됩니다. 이날 제가 본 지렁이들의 사체는 그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운명치고는 참 고약합니다.
어느 책에서 지렁이를 구조하는 사람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날도 비가 몹시 내렸습니다. 예외 없이 지렁이들이 살려고 도로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를 가엾게 여긴 사람이 지렁이를 손으로 집어 연신 화단으로 던졌습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 많은 지렁이를 언제 다 옮기려 합니까?”
지렁이를 옮기던 사람이 얼굴을 들고 대답합니다.
“아마도 이 녀석들을 다 살리긴 역부족이겠죠? 저도 압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가 옮긴 녀석들만큼은 살지 않겠어요?”
저는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능력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지렁이를 건져 올리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던 겁니다. 사실 도로로 쏟아져 나온 지렁이를 한 사람의 힘으로 구하는 건 불가항력입니다. 군대가 와도 못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대로 내버려두면 지렁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물론 지렁이에게 관심 없는 사람은 못 본 체 지나가겠지만, 연민의 마음이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지렁이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실행에 옮기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요.
평소에 우리가 지렁이를 보는 일은 드뭅니다. 그들이 눈에 뛸 때는 비가 내릴 때나 경작을 위해 땅을 뒤집을 때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지렁이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여 지렁이가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가끔 잊습니다.
그렇지만 지렁이는 엄연히 생명을 가진 존재로 우리 곁에서 숨을 쉽니다. 자연의 이치대로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갑니다. 장마철 물폭탄을 피해 지상으로 올라오는 불행한 사건만 없다면 그들은 그들대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살아갈 겁니다.
우리는 눈에 띄어야만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은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이런 망각과 무지는 지구가 인간을 위해서만 돌아간다고 믿게 합니다. 만약 우리가 눈에 띄지 않는 존재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한다면 어떨까요.
지렁이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지만 우리와 함께 지구를 구성하는 일원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비단 지렁이뿐이겠습니까. 제가 아는 게 없어서 그렇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더 많을 겁니다.
우리가 좀 더 성숙해진다면 그 증표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숨은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이러한 공감능력은 작은 미물에게서 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지렁이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그중의 하나일 겁니다. 이번 폭우로 희생된 지렁이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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