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 필요해-명상인류를 위하여

⁸가끔은 색다른 음식을 먹어 보자

통합인문치유자 2022. 8. 11. 15:12


얼마 전 한국 가곡만으로 레퍼토리를 채운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안현성 지휘자가 이끄는 고양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귀에 익은 가곡을 들었습니다. <가곡에 살리라> 시리즈 세 번째 공연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흥얼대던 가곡을 들으며 추억에 빠졌습니다.

1부는 우리 귀에 익숙한 곡으로 구성했고, 2부는 근래에 작곡한 노래를 서너 곡 배치했습니다. 노래하는 가수들도 나이가 지긋한 소프라노에서부터 국제무대에서 한창 주가를 날리는 젊은 바리톤 가수까지 다양했습니다. 이 날의 연주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의 합이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평소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지요.방송에서 노래를 듣는 것과 직접 현장에서 듣는 맛은 천양지차여서 마치 생일상 받은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공연의 시작은 독주 악기 팬플릇과 오카리나와의 오케스트라 합주로 문을 열었습니다. 가곡 <남촌>과 <향수>를 두 악기의 연주로 듣는데 갑자기 소름이 돋았습니다. 두 곡 모두 친근한 멜로디인 데다 오케스트라 현악 파트의 부드러움이 합쳐져 가슴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노래에 푹 잠기는 사이, 오래 전 누이와 형에게서 가곡을 배웠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왔습니다.

제가 가곡을 좋아하게 된 건 다 누이와 형에게서 받은 음악 세례 덕분입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가곡을 많이 알게 된 것도, 웬만한 가곡을 줄줄 따라 부르게 된 것도 누이들과 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누이와 형은 ‘면허 없는 노래 코치’ 였습니다.

추운 겨울날이면 식구들이 삼삼오오 이불 속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각자의 방이 생겨 헤어지기 전까지 큰 방에서 함께 먹고 자고 뒹굴었습니다. 누이들은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저보다 예닐곱 살 위였으니 중고등학생이었습니다.

누이들은 모이면 재잘재잘 수다를 떨거나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는 유행가요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못 불러서라기보다는 학생이 가요를 부르다는 게 순수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습니다. 학생으로서 최소한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규칙 같은 게 그들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누이들이 부른 건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들이 전부였습니다. 누이들은 자신이 배운 노래를 마치 반복하여 불러댔습니다. 특별히 저에게 들려주려고 애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흥에 겨워 불렀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저는 다만 그 노래를 유심히 들었을 뿐이지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이들은 노래에 관심을 보이는 저를 자신들의 그룹에 끼워주었습니다. 멜로디에 취해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누이들의 그룹 일원이 되면서 눈에 띄게 진보(?)했습니다. 한 곡 두 곡 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음감과 박자를 익혔고, 따로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가곡에 담긴 깊은 정조를 가슴에 담았습니다.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말이죠. 그래서 누이들과 있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성불사의 밤’을 비롯하여 ‘내 마음’ ‘님이 오시는지’ 등과 같은 주옥같은 가곡들을 익혔습니다.

작은형도 노래를 흥얼대긴 마찬가지였지요. 누이들처럼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밤마다 콧노래로 불렀습니다. 가곡 곡조를 몸에 익힌 저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예민한 촉수를 가진 동물처럼 쪽쪽 빨아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음감이 뛰어난 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박자를 놓치기 일쑤이고, 매우 서툽니다. 하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반복되는 누이와 형의 노래는 어느 새 제 마음에 가곡의 씨앗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지나서 대학교 고전음악 감상실에서 디제이로 일할 때 선배들은 저에게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가곡을 지나치게 많이 튼다고 말입니다. 제 딴엔 다 이유가 있었는데 그걸 알 리 없었던 거죠.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열심히 가곡을 내보냈습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새롭게 안 게 있습니다. 제가 한창 가곡을 들었을 때의 작곡가와 성악가들이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시간이 꽤 흘렀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노래는 후배 성악가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이번 연주회에서 들은 가곡들이 언제까지 불려질지는 모르겠습니다. 학교 음악 시간에 가곡 수업이 빠진 지 한참 되었다고 하니 가곡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불려지겠지요? 이번 가곡 공연은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가끔은 평소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을 먹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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