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 필요해-명상인류를 위하여

나는 여전히 ‘셋째딸’이고 싶다

통합인문치유자 2022. 9. 23. 12:13


#1  
알렉스 라티머와 패트릭 라티머 형제가 만든 그림책《반은 늑대, 반은 양, 마음만은 온전히 하나인 울프WOOLF》의 주인공 울프(Woolf)는 제목대로 아버지가 양이고 어머니가 늑대입니다. 울프(Woolf)는 양털의 ‘wool’과 늑대의 ‘wolf’가 합쳐진 이름이지요. 울프의 부모는 늑대와 양의 무리가 던지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지만 아들 울프는 그렇지 못합니다. 양과 늑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을 겪습니다.    

울프가 이러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맞닥뜨린 것은 우연히 늑대들이 모인 곳에 가면서부터입니다. 늑대들은 울프를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지요. 너는 누구니? 울프는 자신도 늑대라고 소개하며 털이 하얀 것은 양을 사냥하기 위해 변장한 거라며 둘러댑니다.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온 울프는 늑대처럼 되려고 가위로 자신의 흰 양털을 잘라버립니다. 그렇게 늑대 무리 속으로 들어간 울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늑대인 척 하며 사는 게 싫어집니다.  

늑대 무리에서 벗어난 울프는 우연히 양 친구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똑같이 너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울프는 자신은 양이라고 말하고는 뾰족한 귀와 꼬리는 늑대가 쫓아오지 못하게 위장한 거라고 거짓말을 하지요. 그 날 밤 울프는 엄마와 아빠의 무스와 헤어롤, 파우더를 이용하여 머리와 꼬리를 하얗게 물들입니다. 그렇게 양들과 어울립니다.  

하지만 울프는 늑대 무리에서 겪었던 것처럼 양인 척하며 살아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염증이 납니다. 늑대와 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외로움을 느낍니다. 눈물을 떨굽니다. 이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울프의 부모가 조언을 합니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울프야, 너는 늑대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하단다. 그것은 말이야, 새롭고 특별한 존재란 뜻이야!”
“만약 네가 자신을 늑대로만 혹은 양으로만 생각한다면, 너의 다른 반쪽을 무시하게 되는 거란다. 그럼 결국 너는 아주 슬퍼질 거야.”

이 말을 들은 울프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습니다. 새롭게 자신을 자각합니다. 늑대들은 늑대의 모습만 고집하고, 양들은 양의 모습만 고집하던 것에 실망한 울프는 늑대와 양 어느 쪽에도 가지 않고 대신 새로운 친구를 찾아 나섭니다. 그 친구들은 울프를 있는 그대로 봐 줍니다. 울프도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대합니다. 울프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입니다.


#2
저는 우리 집에서 4남2녀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 형님이 둘, 누이가 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지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던 터라, 그 많은 자식을 일일이 건사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방목을 선택했지요. 자연히 집안일은 세 살 터울의 형제들이 저마다 맡아 했습니다.

저는 우리 집에서 ‘셋째딸’로 불렸습니다. 사내가 여자가 될 수 없으니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예의 딸들이 하는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어머니를 돕는 일이라면 적극 나섰습니다. 그런 저를 두고 형제들이 그런 호칭을 붙여주었지요. 이 호칭은 결혼하여 자식을 낳은 뒤에도 계속해서 호출되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를 살갑게 돌보는 제 모습을 보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호칭이 싫지 않았습니다. 창피하다거나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집 셋째딸’이란 말이 절 무시하거나 모욕을 주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 그랬는지 모르지요. 제 스스로 정체성 중 하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을 들으면 편안하기까지 합니다.  

#3
수용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수동적 체념, 포기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수용은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체념보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이기도 하지요. 예컨대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 우리의 선택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엎질러진 물,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안타깝게 여기고 애통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깨끗하게 잊고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할는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반은 양, 반은 늑대로 태어난 건 울프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되돌리거나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요. 늑대인 척, 양인 척 하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울프가 경험했듯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을 사는 건 피곤하고 지치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울프 부모의 조언은 지혜롭습니다. 울프가 타고난 정체성을 수용할 때 자신의 반쪽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도록 일깨워주었으니까요.

‘우리집 셋째딸’이란 호칭은 제가 붙인 게 아니라 형제들이 붙여주었지요. 그렇지만 저는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지요.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했으니까요. 아마도 내심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부를 일이 없어진 거지요.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셋째딸로 불리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런 마음 또한 내려놓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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