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수행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해도 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에는 집안일을 하는 고충과 그걸 이해받지 못하는 가정주부들의 억울한 마음이 묻어납니다. 가정주부의 고충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집에서 아침식사 당번을 맡고 있어 아주, 조금은, 심정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뜻하지 않게 강도 높은 집안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전쯤입니다. 아들이 6개월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회식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던 아들이 회식 그 다음날 아침부터 몸살기운을 호소했습니다. 목이 아프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일렀지요. "어때?" 병원에서 돌아온 아들의 대답은 역시나 코로나 양성판정이었습니다.
그 날로 아들은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방콕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자기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지요. 식사는 방문 앞에 놓았고, 수시로 소독을 했습니다. 거실로 나올 땐 꼭 마스크를 쓰도록 했고요. 문제는 매 끼니를 챙겨주는 일이었습니다. 아내가 도맡아서 했지요.
그렇게 사나흘이 지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가 아들과 똑같은 증세를 호소합니다. 몸살처럼 으슬으슬 춥고, 가래가 끓고 목이 아프다는 겁니다. 뭔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즉시 병원을 찾았지요. 불길한 마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양성판정. 아들에 이어 아내까지 격리에 들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격리에 들어간 두 사람을 케어할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장모님이 계셨지만 거동이 불편하여 집안일에서 손뗀 지 오래되었지요. 거기다가 고양이 레몬까지 제 몫으로 남았습니다. 혼자서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했지요.
뭣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집안일을 안 한 것도 아니었지만 난생 처음 이런 상황을 당하니 난감했지요.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부 아닌 주부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아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한 대패삼겸살과 전에 빚어두었던 만두가 눈에 띄었습니다. 삼겹살을 가지고 제육볶음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고, 만두로는 육수를 만들어 만둣국을 끓이면 되겠다는 궁리를 했습니다.
냉장고에는 이것 외에도 많은 재료가 있었지만, 제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재료가 필요했습니다. 마트에 가서 포장 간편식과 시금치, 귤과 토마토 등등을 사왔습니다. 조리가 된 육개장은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 포장을 뜯어 솥에 붓고 버섯과 당면과 같은 재료를 넣고 양념을 추가하면 넉넉히 4인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케어에 착수했습니다. 삼시 세 끼를 아들과 아내의 밥상을 따로 쟁반에 담아 방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장모님과 식사를 했지요.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를 하고, 곧바로 그 다음 끼니를 준비했습니다. 손에서 물이 마르지 않았지요.
밥 먹는 시간은 자주도 돌아왔습니다. 뭘 좀 하려고 하면 식사준비를 해야 했자요. 아침에 이어 점심, 점심에 이어 저녁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연히 제 개인적인 일정은 취소되었습니다. 가까운 연구실 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지요. 집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저도 격리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지요.
그나마 명상 수행을 해온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과 다투기보다는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지요. 이번 일이 제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자문했고,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아들은 일주일을 채우고 자가격리가 해제되었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이제 한 사람만 챙기면 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일반 증상 외에 달리 크게 아프진 않았습니다.
매 끼니 밥상을 차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며칠을, 그것도 연속으로 삼시 세끼를 차려내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았죠. 매 끼니 식탁에 무얼 내놓을지 고민이 되었고, 무엇보다 식사 준비로 쉴 틈이 없었지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묶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불편했습니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티도 나지 않는다는 걸 비로소 체득했습니다. 인내와 마음을 다스리는 주문은 필수였지요. 그 날부터 이 세상의 모든 주부들이 수행자처럼 보였습니다.
#김기섭의수행이필요해
#코로나
#자가격리
#집안일
#가정주부
#참새방앗간
#명상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