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7일
실용주의에 대한 토론들은 무성하지만, 서양에서 실용적이란 말은 무지(無知)스럽고 때로는 이기적인 단견(短見)을 의미할 경우가 많다. 이번 생(生) 한 번이 있을 뿐이라는 근시안적인 견해야말로 거대한 속임수요, 현대 세계가 황량하고 파괴적인 물질주의에 휘둘리고 있는 근본원인이다. 아무도 죽음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죽은 뒤의 생(afterlife)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른바 진보된 세계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도록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살기를 바라고 계속 살기를 바란다면, 무턱대고 죽으면 끝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죽은 뒤에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조차 시도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가 스스로 주장하듯이 과연 그렇게 실용적인 인간이라면, 우리의 진짜 미래가 어디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일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어쨌거나, 우리 가운데 백 살 넘겨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 뒤에, 헤아려 말할 수 없는 영원한 무엇이 펼쳐져 있다.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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