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 놀랍고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분석을 잘 하는 이가 있다면 받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지요.
꿈에선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강의를 하러 가는 길이었죠. 무엇을 강의하려고 했는지 기억나진 않습니다. 여하튼 강의장을 가려고 교정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죠.
그런데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사람을 올려다 보았지요.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가방을 낚아채더니 안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곧 뭔가를 발견한 그 사람은 그걸 가지고 도망을 쳤죠. 붙잡을 틈도 없었지요. 그의 손엔 제가 강의할 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봐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놀란 나머지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가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조롱 섞인 웃음을 날렸습니다. 책을 돌려달려고 사정을 했지만 그럴 마음조차 없어 보였죠. 뒷걸음질을 치더니 곧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이고, 왜 제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영문조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대해 아무런 제지도 못한 제가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분도 엉망이었죠. 책을 잃어버린 것도 속상했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지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찌 할 도리가 없다면 내려놓아야지, 하는 마음이 한 켠에서 올라왔습니다. 책 없이 강의한 적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죠.
문제는 뒤이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문득 수업 때 쓸 유인물이 있었는데 복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시계를 보니 강의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급해졌지요.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훅 끼쳐 왔습니다. 정신이 혼미했고 목이 바싹 탔지요. 책은 없어도 괜찮았지만 복사 유인물은 필요했으니까요.
이런 갑갑한 생각이 밀려오자, 가슴이 답답해왔습니다. 정신이 혼란스러웠죠. 이 불운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했습니다. 불현듯 삶이 지긋지긋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죠. 눈을 떴습니다.
“휴, 다행이다!”
저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습니다. 한숨이 쉬어졌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개꿈이야.’ 그렇게 넘기고 싶었지만 자꾸 마음이 쓰였습니다. 제 자신이 바보 같아 보였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 존재, 그게 자꾸 생각났습니다. 해야 할 일도 못하고 속을 끊이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꿈에서 깨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삶이 되풀이된다면 끔찍할 거라는 마음이었죠. 꿈이니 망정이지, 또다시 계속된다면 괴로울 것 같았습니다.
꿈에서처럼 살아오지 않았는지 문득 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살아지는 대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어 있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꿈을 꾼 이후로 깨어있는 삶이 더 없이 소중했습니다. 알아차림이 왜 필요한지 명확하게 들어왔습니다. 이번 일로 꿈을 깨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김기섭의수행이필요해
#꿈
#깨어있는삶
#알아차림
#참새방앗간
#그림책명상학교

'수행이 필요해-명상인류를 위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의 삶이 수행이 되려면  (2) 2022.12.29
만두빚기  (0) 2022.12.15
대단한 수행  (0) 2022.12.02
미련 내려놓기  (0) 2022.11.25
어항을 청소할 시간  (1) 2022.11.10
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