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춘 적이 언제인가?


며칠 전부터 쉐이킹명상을 시작했다. 이 명상은 말 그대로 몸을 위아래로 흔들고 명상을 하는 것이다. 기간은 일주일, 매일 새벽 6시 반에 모여 온라인 줌을 통해 몸을 흔든다.
방법은 간단하다. 쿤달리니를 일깨우는 비트 강한 리듬에 맞춰 생각 없이 몸을 흔드는 게 전부다. 되도록 동작을 크고, 강하게 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유의할 점이 있다.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자신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프라이머리, 즉 자신이 세운 의도를 떠올리고 몸을 흔드는 게 규칙이다. 나의 프라이머리는 통찰이다. 올 한해 통찰 있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먹고 정했다. 그래서 몸을 흔들다가도 부끄럽다거나 남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통찰 있는 삶을 살겠다는 의도를 떠올려 생각을 따돌리고 춤에 올인한다.
그런데, 처음 오리엔테이션할 때 나는 조금 놀랐다. 지인에게 듣기는 했지만, 이 해괴한 짓을 왜 해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올라왔다. 그 날, 조금 더 따져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참여하겠다고 결정한 걸 후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타고난 몸치인 걸 잠시 잊었던 것이다. 춤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 앞에서 춤을 춘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허락할 수 없는 일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춤추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둘째 날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줌에 들어가니 내가 저지른 실수가 작은 일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닫고 도망치고 싶었다. 아뿔사,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4060 여성들이었다. 이들과 같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거센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래도 나를 소개한 지인을 생각하여 차마 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내가 빠지면 소그룹 멤버가 수료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춤추는 것을 그렇게 꺼리는 내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를. 나는 춤은 고사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하라는 리더의 말과 다르게 점점 멀어져가는 나를 어색하게 지켜봐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김없이 알람소리에 일어났고 샤워를 한 후 줌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아직도 떨떠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사이 바뀐 게 있다면 고민 끝에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다. 내가 자초한, 그리고 맞닥뜨린 이 현실과 다투지 말자는 생각을 그때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현 상황과 다투기보다는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줌에 들어오는 중년 여성들 또한 몇몇 사람을 빼놓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 이 명상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던가. 애초에 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심사평가위원회가 매번 나를 좌절시켰던 걸 떠올리며, 더 이상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다르게 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무심하게 몸을 흔드는 것이 자유로워졌다. 그것도 약 12분 동안 누가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적응기를 거치는 동안 내 몸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저절로 몸이 움직이며 춤 아닌 춤을 추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생소했지만 이런 나도 있구나, 하는 수용적인 마음에 슬쩍슬쩍 웃음이 나왔다.
어느 날 쉐이킹을 할 때 같은 패턴의 움직임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같은 동작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즉각 수정하고 고치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쫓아 그대로 따라했다. 연신 방향을 바꾸고 무릎, 허리, 가슴, 목, 머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몸을 움직였다. 비규칙적으로 패턴을 바꿔가면서. 사방으로 찔러대고 흔들어대고 어깨를 들썩거리는 광란의 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갔다.
그런데 하나도 부끄럽거나 창피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호흡은 가쁘고 온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오히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내 속의 심사위원들의 말을 거부하니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럴수록 더 세게 나는 흔들었다. 고약한 심사위원이 나가떨어질 정도로.
곧 음악이 잦아들고 이어지는 명상의 순간, 나는 서 있던 자세에서 앉은 자세로 고쳐 자리에 앉아 정좌명상을 시작했다. 격하게 몸을 움직이다가 멈춘 뒤라 더 깊게 내면으로 들어갔다. 몸의 세포가 열기에 펄떡였다. 떨림이 다른 때보다 크고 강했다. 관찰은 섬세해지고, 머리는 명료해졌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고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몸을 흔드는 것부터 나눔을 하는 시간까지 약 30분. 그 시간 동안 나는 온전히 나를 만났다. 오랜만에.
이것도 내일이면 마지막이다. 외면상으로는 처음 시작할 때와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변화가 아예 없지는 않다. 먼저 춤추기를 꺼리던 내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춤을 추었다는 게 경이로웠고, 이 명상을 하면서 아픈 허리가 부드러워졌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나에게 이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다. 얼마 전까지 허리에 나무를 덧댄 것처럼 뻣뻣했다. 심한 경우 허리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명상을 하고 나서 허리가 가벼워졌다. 아마도 몸을 사정없이 흔들다보니 스트레칭 운동이 되었다보다. 반갑게도 요통도 줄어들었다. 쉐이킹명상이 뜻하지 않게 치료제가 셈이다.
내 은사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행복해지려면 세포를 춤추게 하라고. 그가 내린 처방은 시간 되는대로 몸을 흔들라는 것이다. 즐겁고 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춰보라는 것. 그때는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와 춤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춤은 생각을 멈추게 하고, 자유로움을 선물로 준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이 많으면 절대 춤을 출 수 없다는 것도.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는가. 생각의 질주 속에서 또 얼마나 방황하며 사는가. 생각이 많은 사람은 얼굴이 어둡다고 한다. 또 심하면 우울과 신경증으로 발전하고. 이때 필요한 처방이 춤이 아닐까. 생각의 노예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주니까.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의 치료사는 몸이 아프거나 의기소침한 부족민에게 약을 처방을 하기 전에 꼭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춤을 춘 것이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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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