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돌봄에세이
호수공원을 즐기는 두 가지 방법


누가 말했는지는 잊었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현미경과 망원경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현미경은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은 멀리 보려고 할 때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일은 천천히 살펴봐야 실수가 없다. 황급히 뭔가를 처리하다보면 빠뜨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 차분히, 자세히 보지 못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꼼꼼하게 할 일을 대충대충 하다보면 동티가 나서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일을 하다보면 전체를 보고 일을 처리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미시적으로만 보게 되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 그리고 크게 보는 안목 또한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하다.
나는 호수공원을 갈 때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쓴다. 하나는 천천히 느리게 걷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전거를 타고 멀리, 넓게 유람하듯 구경하는 것이다.
내가 아내와 유일하게 함께 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호수공원을 산책하는 일이다. 우리는 토요일 또는 일요일 아침마다 빠짐없이 호수공원을 걷는다. 천천히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로 보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형식은 주간보고 형태였지만 주로 힘들고 어려웠던 사건을 겪으며 얼마나 피폐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를 털어놓는 자리이다. 걸으면서 털어놓고 털어놓으면서 풀어가는 일종의 의식을 호수공원을 걸으며 하고 있다. 내가 한 주 동안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는 식의 건조한 정보를 나열하는 식이라면, 아내의 보고는 구체적이고 감정적이고 섬세하다. 일주일간 직장생활하면서 묵혀 두었던 감정을 풀어내는 해원 의식을 이때 치렀으니까. 아내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진상고객들이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치러내며 겪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진저리를 친다. 그러면 나는 동조의 신호를 보내며 화를 낼 때는 같이 화내면서 신나게 털어놓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그게 같이 사는 남자의 최소한의 역할이었고, 지금도 그 역할은 유효하다. 여하튼 한바탕 마음속에 쌓아둔 감정을 풀어내면 아내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헐겁고 편안해진다. 그러면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 아이들 얘기, 어머니 얘기, 국을, 반찬을 뭐 해서 먹을 건지 등등 사소한 세계로 접어든다. 매번 호수공원의 같은 코스, 같은 길을 걷지만 화제는 매번 다르다.
우리는 이렇게 호수공원을 걷는 동안 수시로 변하는 호수공원 사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춘하추동 달라지는 고유하고 특별한 맛을 함께 호흡한다. 특히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며, 어느 계절,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느끼고, 또 허무하게 지는 꽃들을 보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싯구처럼 사라지기에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에 공감한다. 하나하나 놓칠 것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천천히 걷기, 자세히 보기의 매력이다. 물론 얘기에 열중한 나머지 귀한 풍경을 놓칠 때도 더러 있지만, 자주, 같은 코스를 반복적으로 다니다보니 놓친 풍경은 그리 많지 않다.
걸으면서 호수공원을 감상하는 맛과 비견되는 것이 자전거를 타면서 호수공원을 즐기는 것이다. 이 맛은 좀 더 특별하다. 망원경이 멀리 있는 장면을 눈앞에 가져다놓듯이 자전거로 떠나는 호수공원 산책은 차마 가보지 못한 곳을 가도록 이끌어주고, 즐겨 다니던 길을 벗어나는 이탈하는 자의 낯섬과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아내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 우리의 자전거 산책에는 2인용 자전거가 필수적이다. 겁이 많은 아내는 자전거를 타는 것을 무서워하지만 2인용 자전거는 안심하고 자신의 몸을 내맡긴다. 태어나서 처음 타본 자전거도 2인용이니, 아내의 기쁨은 매번 자전거를 탈 때 최고조에 이른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기뻐하는 아내를 태우고 호수공원을 유람하는 재미는 생각보다 쏠쏠하다. 4월말에서 5월 초쯤 벚꽃이 꽃비가 되어 떨어지는 길을 달리는 맛이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벚꽃을 보는 일이며, 바닥에 떨어진 하얀 벚꽃 길 위를 페달을 밟으며 지나는 기쁨은 과장해서 말하면 행복의 극치라고 할 것이다.
호수공원을 걸을 때는 변하는 풍광을 예민하게 관찰할 수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돌 때면 걸을 때에 비해 둔감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보다 빠르게 보다 멀리 볼 수 있어 전체를 가슴에 담을 수 있다. 또 호수공원을 구석구석 들쑤시며 다닐 수 있고,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한 곳, 멀리서 바라다보기만 했던, 그냥 스치고 지나간 곳을 들르는 재미도 크다. 익숙하다고 여긴 곳에서 만나는 낯선 풍광은 때때로 감탄과 감격의 말을 쏟아내게 한다. 늦가을이면 애수교 위쪽과 4주차장 주위의 낙엽 위를 자전거로 지나며 구석구석을 훑는 흥취는 신나고, 노래하는 분수대, 만국기가 걸려있는 호수광장 곳곳을 보물찾기 하듯 뒤지고 다니는 소소한 맛은 제법 근사하다.
재삼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면 호수공원 전체의 변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일품이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꽃이며, 때가 되면 변하는 나무들의 변신을 보면서 기운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흐르고 변화하는 것을 바람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신나게, 그리고 세게 페달을 밟으며 이 생동하는 기운을 들이마시는 맛이란 상쾌하고 짜릿하다. 이때, 아내는 어김없이 환호성을 지른다. 환희에 찬 소리는 내 귀를 타고 온몸으로 울려 퍼진다.
호수공원을 즐기는 방법이 어찌 이 두 가지만 있을 것인가. 피는 꽃에 따라, 장소에 따라, 목적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현미경과 망원경을 두루 활용하는 내 방식은 비록 수수하지만 호수공원을 충만하게 느끼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살아가는 일 또한 이러면 어떨까. 때로는 현미경으로, 때로는 망원경으로 보며 삶의 균형을 이루며 살 수 있다면.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지만, 가까이서 멀리서 두루 다 보고, 그것이 무엇이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아마도 넉넉한 초연함을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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