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작은 공원이 생겼다. 얼마 있으니 공터에 건물을 올리려 하는지 정지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보니 며칠 사이에 건물 하나가 봄날 연초록 싹이 삐죽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때부터 이 건물의 정체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차를 타고 그 옆을 지나치면서도 자꾸 눈이 그 건물로 향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느새 저 건물이 도서관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떨 때는 도서관이 들어서길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적이 놀란 적도 있었다. 동네에,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도서관이 생긴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일산으로 이사 오기 전에 10여년 살았던 집은 도서관이 코앞에 있었다. 틈나는 대로 들러 책을 빌리고, 주말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가서 반나절 책과 씨름하며 보냈다.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그림책을 읽어 주면 왠지 뿌듯하고 기뻤다. 아이들이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뽑아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재촉하면 소리를 죽여 가며 책장을 넘기고 속삭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게 되면서 읽어주는 일은 뜸해졌지만, 딸아이만큼은 아빠가 읽어주는 것이 좋아서인지 여전히 책을 한아름 가져왔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깊은 연결감을 확인하는 일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좋은 추억이 있어서인지, 짓고 있는 건물이 도서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점점 더 커져 갔다. 간절히 원하면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진짜 믿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며 내 소망이 현실화되기를 얼마나 빌고 빌었는지 모른다.
하루는 산책을 하다가 공사 인부들에게 물었다.
“무슨 건물을 짓는 거예요?”
그러나 그들도 잘 모르는지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다. 아마도 건물의 용도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내 궁금함은 나날이 쌓여 갔고 건물은 건물대로 나날이 조금씩 올라갔다.
이윽고 3층 건물이 소박한 모습을 띤 채 완공되었다. 이제 건물도 완성되었으니 곧 그 정체를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현판이 내걸리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기다려도 기다려도 현판은커녕 건물의 문은 열릴 기미조차 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바라는 도서관 말고 다른 용도의 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참다못한 나는 산책을 하다말고 마침 그곳을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무슨 건물이에요?”
“도서관이랍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는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게 반갑고 좋아서 온몸에 기쁨이 출렁거렸다. 도서관이라고 답해준 사람이 이런 나를 유심히 봤다면 조금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상관할 일이 뭔가.
그때 내 솔직한 심정은 안도감과 확신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믿고 싶었으니 당연히 반갑고 고마웠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도서관이 정식 개관을 했다. 3층 건물에 1층만을 도서관으로 쓴다는 걸 알고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작은 규모면 뭐 어떤가.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는 것,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벅차고 행복한 노릇이었다.
개관식에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며칠 뒤 가족에게 당당하게 이렇게 외쳤다.
“이제부터 저 도서관은 내 도서관이라고 불러줘. 모당작은도서관이라는 정식 이름이 있지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노고를 인정받아도 된다는 당위가 이런 당치 않은 말을 했을 테지만 가족들도 도서관, 도서관을 외치는 나의 정성어린 주문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돈 드는 일은 아니라 여겨서인지는 몰라도 순순히 그러겠다며 동의했다.
여하튼 도서관이 생긴 이후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산책길 동선이 바뀌었다는 거다. 반드시 산책은 도서관을 경유했고, 산책하다가 잠깐 쉬는 곳도 도서관이 되어 버렸다. 내 도서관이 나의 쉼터이자 기본 산책 코스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만큼 도서관은 나에게 더없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2021년 신축년 소의 해도 달력 한 장을 남겨두고 있다. 이미 소망을 이룬 사람도 있을 테지만, 아직 원하는 걸 이루지 못했다면 포기하지 말고 간절히 소망해보시길. 어찌 아는가. 도서관 같은 선물이 떡하니 기다렸다가 다가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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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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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