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 244만 시대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나도 어찌하다보니 한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반려묘를 키우는 어엿한 주인이 된 것이다. 그리된 연유는 우연찮게 이루어졌다. 어느 날 딸애 남자친구가 아침에 출근하는데 차 밑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불쌍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딸에게 키워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딸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의사타진을 해왔다. 반려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던 나로서는 반대할 의사가 없었다.
문제는 반대가 극심할 두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장모님은 반려동물 키우는 걸 몹시 싫어했다. 냄새 나고 털 날리는 걸 견디지 못했다. 딸이 이 난공불락을 어떻게 뚫을지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철옹성은 의외로 간단히 무너졌다. 고양이에게 항복하듯이 성문을 열어준 것이다. 아마도 길고양이라는 동정표가 마음을 흔들어놓은 듯했다. 어린 길고양이에 대한 일종의 연민, 또는 생명에 대한 책임의식이 발동한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쌍수 들고 환영한 건 아니다. 딸아이가 고양이 양육에 관한 한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면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반려묘와 낯선 동거가 시작되었다.
딸애가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묻길래 나는 ‘레몬’이 어떠냐고 답했고, 딸도 좋다고 하여 그대로 정했다. 뒤에 레온, 레오 라는 이름이 거론됐지만, 나와 딸이 레몬으로 밀어붙여 그대로 원안이 통과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레몬은 고양이와 상극이다. 고양이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레몬향이란다. 귀여워 엉겁결에 붙인 이름이 고양이를 쫓는 냄새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을 것이다.
딸애는 집에 들이기 전에 종합검진과 목욕을 깨끗하게 시킨 후 데려왔다. 태어난 지 육개월된 레몬은 귀엽고 발랄했다. 처음 며칠을 제외하곤 자신의 세상인 양 거실이며 부엌을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걷는 뒤태만 보면 아주 작은 호랑이었다.


며칠 뒤부터 연이은 사건이 터졌다. 레몬은 사고뭉치, 극성쟁이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통제가 안 되었다. 놀라운 점프실력을 발휘하여 선반에 올라갔고 녀석이 지나간 자리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미리 물건을 치워두었기에 망정이지 어린 고양이의 거친 행보는 가족들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레몬이 뭐해?” “레몬이 어딨어? 가족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린 고양이의 소재 파악에 골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가장 염려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도, 점심 먹으러 나오는 장모님도 빼놓지 않고 어린 고양이의 안부부터 물었다.
“자고 있어.” “혼자 놀고 있어.” 이 말을 들으면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고양이는 생각보다 요구가 많았다. 그중의 하나가 놀아달라는 것. 새벽에서부터 자정을 넘길 때까지 녀석은 지치지 않고 놀아달라고 야옹야옹 재촉을 했다. 성에 차지 않는 날에는 은밀하게 다가와 발을 물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했다. 아무래도 가장 큰 피해자는 딸이었다. 새벽부터 놀아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잠을 설쳤고, 잠자는 발을 계속 물어대자 잠자리를 안방으로 옮겼다. 그 바람에 나는 거실로 쫓겨났다.
어느 새 한 달이 되어가는 이즈음, 레몬은 잔잔하던 집에 파문을 남기고 있다. 큰애는 이미 나가 산 지 오래고, 딸마저 오피스텔을 얻어 살며 간혹 들르곤 하여, 세 사람이 사는 집은 조용하고 무료했다. 그런데 불청객 레몬은 세 사람의 오랜 라이프 스타일을 흔들어놓았다. 적응이 안 되기는 녀석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레몬아!”를 소리 높여 외치고 “이 놈!” 하며 고성을 지르는 일은 여전히 빈번하게 울려 퍼진다. 어린 틈입자는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작은 변화도 감지된다. 아내와 장모님이 달라졌다. 반려묘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이들이 어린 고양이를 당당히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고양이를 찾고, 밥은 먹었는지, 말썽은 안 부렸는지 묻곤 한다. 심지어 아내는 레몬이 싸놓은 분변을 치우는 걸 불평 없이 묵묵히 해내고 있다. 어느 새 우리 집의 화제 일순위는 레몬이고, 인기로 따지면 최고 스타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집안 분위기도 바뀌었다. 고요하기만 하던 집에 활기가 넘친다. 공통의 화젯거리가 생기고, 웃고, 걱정하고, 야단치고, 안부를 묻는 경쾌한 목소리가 집안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어린 고양이가 이런 변화를 도모할 리 없건만 이런 달라진 풍경이 반갑기 그지없다. 돌봄이 필요한 어린 고양이가 오히려 가족들을 웃게 만들고 연결 통로가 되고 있으니. 앞으로 레몬이 어떤 장난을 쳐댈지, 그 바람에 우리는 얼마나 물리고 할큄을 당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웃음과 이야기꽃의 중심에 레몬이 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걸 마치는 대로 나는 레몬과 놀아주어야 한다. 나에게 부과된 의무이다. 전에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하니 성가시다. 그렇지만 이 성가신 일이 고맙고 소중한 건 뭘까. 

#수행이필요해
#불청객이준선물
#레몬
#길고양이
#반려묘
#모든존재가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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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