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글쓰기는 자신에게 떠나는 여행입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여행입니다. 이 여정은 늘 즐거운 일만 기다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즐거운 일보다는 더 빈번히 상처와 고통과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으로 글쓰기는 용기 있는 행위이자 용기를 내야 하는 작업입니다. 직면의 고통을 경험하는 가슴 아픈 여정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변수가 많은 여행입니다.

그 대가는 달콤쌉싸름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단단하고 탄탄한 새로운 길을 내는 여행입니다.
  
그림책 치유글쓰기 세션에 참여한 정혜 씨(가명)는 오십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10개월 동안 강좌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정혜 씨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습니다. 아버지는 기가 센 어머니에 눌러 무능력했고, 어머니는 어린 정혜 씨를 허드렛일 같은 궂은 일을 시키며 죽음의 위기로까지 내몰았습니다. 한 번은 손에 동상이 걸렸는 데도 약 한 번 발라주는 일 없는 매정한 엄마였습니다. 심지어 때리는 일도 잦아 기절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정혜 씨는 그림책을 읽고 글을 쓸 때마다 어머니 얘기를 빼놓지 않고 썼습니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 특히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드러내며 욕을 하고 비난했습니다. 자신에게 못된 짓을 한 어머니를 고발하듯이 글을 쏟아냈습니다.

글을 쓰고 읽을 때의 그녀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구슬프고, 격정적이고, 원한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매번 글을 쓰며 어머니를 욕하고 저주하고 몸서리칠 정도로 미워하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강도가 약해지더니 나중에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쓸 게 남지 않은 듯한 인상마저 주었습니다.

미연 씨(가명)는 4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활기차게 사는 여성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딸 하나를 두었고, 남편과의 사이도 좋습니다. 직업도 모든 여성이 선망하는 일에 종사합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면 눈물을 자주 쏟습니다. 거의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눈물을 뿌렸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여왕이란 별칭을 얻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에게 높은 기대를 가졌습니다. 이상적이고 완벽한 여성으로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 부모의 기대를 모르지 않아서, 그녀는 그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습니다. 없던 힘까지 다 끌어 모아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럴수록 부모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녀는 그 목표를 위해 또다시 종종거리며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몇십 년, 그녀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대로 살아가다간 자신의 삶이 없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하세요’ 라는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그녀의 말은 가슴에 멍으로 남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부모님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가슴 안에 가득 찼고, 그림책을 보면서 자신이 못난이처럼 느껴져 괴로웠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혜 씨와 미연 씨는 하나같이 부모님의 잘못된 양육의 희생자들입니다. 한 사람은 방치와 학대를 당했고, 또 한 사람은 지나친 기대에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림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상처, 욕망의 좌절을 자각하면서 울분의 감정을 토해내고 자신의 슬픔에 연민을 표시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림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여행에서 그동안 참았던 아픔을 보았고, 억압된 내면의 감정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말들을 글쓰기라는 행위로 분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욕망과 참된 자아를 발견했습니다.

그림책을 촉매로 일어난 자신의 느낌과 생각, 즉 정서적 반응을 알아차렸고 진행자와 대화를 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을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정혜 씨는 그림책을 읽고 꾸준히 글을 쓰면서 스스로 자신이 치유받았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신의 상처와 마주했고, 자신이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내며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습니다. 비슷한 조건과 상황이 나타나면 악감정이 되살아날 테지만 전에 만큼 미움이 온몸을 불태우지는 않을 거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연 씨는 눈물과 함께 가슴 한구석에 꾹꾹 눌러 돌이 되어버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가벼워졌습니다. 미소도 되찾았습니다. 몇 년 뒤 다른 그림책 세션에서 만났을 때는 더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전처럼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눈물의 여왕을 졸업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자신, 부족하고 미웠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변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림책으로 글쓰기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이자 자기 수용의 과정입니다. 우리나라 문학치료 분야의 대가인 이봉희 교수는 이런 과정을 일러 자신안의 시인을 만나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는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에 100퍼센트 동의합니다. 자신 안의 시인을 만나는 일, 그림책으로 글쓰기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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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