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던가. 곳간에 쌓아둔 게 많다면야 천사표로 살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폐지를 주워 장학금을 기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럴 여유와 마음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언감생심이다.
살다보면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상대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지만 익숙해지면 호의를 당연히 여긴다. 심하면 왜 전처럼 해주지 않느냐며 서운해 하기까지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주는 쪽에선 처음부터 아예 주지 말아야 했어, 라며 자책하거나, 주는 내가 문제가 아니라 받는 상대의 뻔뻔함이 문제야, 라고 탓하게 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렇게 된 데에는 양쪽 다 책임이 있다. 자신과 상대에 대해 깨어있는 마음이 부족했으니까. 일본의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하늘은 나는 사자》는 상대에 대한 기대와 몰이해가 낳은 오해의 문제를 다룬다.
사자와 고양이들은 이웃사촌이다. 사자를 찾아온 고양이들은 사자가 가진 화려한 갈기와 우렁찬 목소리를 부러워한다. 우쭐해진 사자는 보답으로 고양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그럴 때마다 고양이들은 사자의 요리솜씨를 칭찬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곧 사자는 피곤해진다. 고양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시간이 들어나면서 잠자는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사자는 자신에게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번 호소하지만 고양이들은 사자를 이해하기는커녕 비웃는다. 슬픔에 잠긴 사자는 눈물을 떨군다.
고양이들의 요구가 계속되던 어느 날, 사자는 그만 자리에서 쓰러진다. 고양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깨닫지만 사자는 이미 딱딱한 돌이 되고 난 뒤이다. 수백 년이 흐른 뒤, 엄마와 아기고양이가 돌사자 옆을 지나간다. 아기 고양이가 돌사자를 보며 왜 여기서 돌이 되어 잠자고 있느냐고 묻자 엄마 고양이는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아기고양이가 이렇게 말한다. “으음… 분명 피곤했을 거예요.”
이 말을 들자 돌사자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다. 아기고양이가 사냥할 수 있느냐고 묻자 사자는 예의 우렁찬 소리를 내며 하늘로 뛰어오른다.
우리는 누구나 존중받기를 바란다. 인정 욕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아온 인류의 진화적 산물이라고 한다. 얼마 전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녀들이 부모와 교사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라고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림책에서 오랜 세월 잠을 자던 사자를 깨운 것도 마음을 알아주는 위로 의 말 덕분이고, 사냥할 수 있느냐고 묻자 전과 같이 하늘로 날아오른 것 또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소산이다.
그러나 지나친 인정 욕구는 문제가 많다. 자신의 욕구보다는 다른 이의 욕구를 맞추며 살아가는 걸 당연히 여기고, 그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라는 환상을 품게 된다. 자연히 자신의 욕망을 거세하면서 영혼은 병들어간다. 그림책으로 치유작업을 하면서 이런 분들을 많이 봐왔다. 어떤 참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기도 했다.
그림책에서 고양이들은 사자의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요구가 무리하다는 걸 모른 채 사자는 원래부터 강하고 솜씨가 좋다고 치부해버린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사자가 잠을 자야 한다고 여러 차례 호소했음에도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사자와 잠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비웃은 건 잘못이다. 사자를 돌로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까.
사자의 대응도 조금 아쉽다. 돌사자로 변하기 전에 고양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잠을 자지 못해 힘들어. 이런 고통을 너희들이 알아주면 좋겠어.” 사자가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더라면 고양이들은 그런 사자를 조롱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 양식 있는 고양이들이라면 사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부탁을 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사자나 고양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건 뭘까. 고양이들은 고양이대로 사자의 호의를 당연히 여기는 태도를 경계해야 옳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는가. 사자 또한 자신의 몸과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했다. 인정욕구 이전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
사자와 고양이들이 자신과 상대에 대해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관계가 파탄나는 일을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사자와 고양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김기섭의수행이필요해
#참새방앗간
#사노요코
#하늘을나는사자
#깨어있는마음
#인정욕구
#칭찬
#명상하기좋은그림책
#명상인류를위하여
#그림책명상학교
'그림책명상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치유를 위한 행복수업 <그림책치유글쓰기> (0) | 2022.04.04 |
---|---|
#4월_그림책명상학교 프로그램 안내 (0) | 2022.03.24 |
2기 그림책명상지도사 모집 (0) | 2022.03.07 |
오늘의 그림책 한 컷ㅡ보이지 않는 아이 (0) | 2022.03.02 |
몸마음챙김명상 4기 모집 (0) | 2022.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