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하다보면 어려운 순간이 종종 있죠? 예컨대 반응이 없거나 산만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조자 모를 때 말입니다. 둘 다 최악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경험상  후자가 더 심난합니다. 왜냐구요?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로 그 심난한 수업을 마쳤습니다. 성남에 있는 내정초 1,2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수업이었는데, 한마디로 난감했습니다.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수업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근래에 해보지 않아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수업주제는 ‘그림책으로 배우는 가치토론’이었습니다. 첫날, 둘째 날 모두 그림책 『빈화분』(데미 글/그림, 서애경 옮김, 사계절)을 가지고 진행했습니다. 첫날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손가락토론’을 했고, 다음날에는 토론주제를 2개 정하여 ‘왜냐하면’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수업을 하면서 느낀 건 여전히 저학년 수업은 어렵다는 겁니다. 일단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말하고 아무 때나 끼어들고, 짓궂은 장난을 쳐서 친구와 다투는 일도 일어나고. ‘집중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목이 마르고 쉬어 갈라지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래서 첫날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맡은 걸 후회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저학년 강의 의뢰가 오면 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둘째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달랐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어제의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차분해진 겁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을 할 순 없었죠.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날 읽었던 그림책에서 토론주제를 2개를 뽑아 조별로 찬반 아이디어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임금님이 후계자를 뽑은 방법은 옳은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후 핑은 나라를 잘 다스렸을까’ 하는 주제였습니다.

아이들은 조별 토의를 거쳐 토론주제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아이 한 명당 네 장의 포스트잇을 나눠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죠. 전지를 반으로 나눈 종이에 찬성과 반대를 적도록 한 후 찬성이든 반대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데에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쓰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어렵게 생각하더니 곧 방법을 터득했는지 탄력이 붙었습니다. 내용보다 양이 더 중요하다고 독려하자 아이들 사이에선 경쟁이 붙었습니다. 옆의 조의 아이디어를 살펴보라고 했을 때는 몰입의 정도가 더 세졌습니다. 급기야 그만할 것을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을 억누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가까스로 활동지를 제출하라고 한 뒤에 끝이 났습니다.

이후 또 다른 토론주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주제는 ‘정직하면 보답을 받을까?’였습니다. 몇몇의 아이들은 그렇다고 답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더 많았습니다. 보답을 받는 경우는 정직 말고도 많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저학년들의 생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었습니다. 

이후 수업을 마칠 시간이 되어 띵샤를 이용하여 눈을 감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띵샤의 소리가 신기한지 예민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띵샤는 주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릴 때 사용합니다. 아이들에게 띵샤의 용도를 알려주었습니다.

띵샤가 울려 퍼지자 아이들은 조용한 가운데 눈을 감았습니다. 전날의 수업, 오늘의 게임을 얘기해주고, 기억나는 것을 중심으로 짧은 글이나 시 쓰기, 편지쓰기, 그림으로 그려볼 것을 요청했습니다. 띵샤를 울리자 눈을 뜬 아이들은 미리 준비한 종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손가락토론과 책을 읽어준 장면을 그림을 그리는 아이, 핑에게 편지를 쓰는 아이, 띵샤를 그리는 아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내 모습을 그렸고, 또 어떤 아이는 나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편지를 쓴 아이는 전날 수업이 지루하다고 큰소리로 외쳤던 아이였습니다. 전날은 몰랐지만 관심을 끌기 위한 그 아이만의 방식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몇몇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띵샤를 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어리는 눈으로 조심스럽게 띵샤를 울렸습니다. 소리가 좋고 멀리 나가면 착한 마음을 가진 거라고 말해주자 미소를 지었습니다. 영락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이틀간의 수업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1,2학년의 저학년 아이들과 토론수업을 한다는 건 다시 생각해봐도 어렵습니다.  주의가 산만하고 제멋대로인 아이들, 이들과 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년의 수업에 비해 두서너 배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그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학년, 고학년 아이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순수함과 맑음입니다. 나에게 편지를 쓴 아이도 그런 아이 중 하나입니다. 

이틀간의 토론수업은 고난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또 수업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바로 하진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진저리는 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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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