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0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입니다.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아버지가 제안을 합니다. 2시간가량 떨어진 에블린에서 점심을 먹자고 말이죠. 부인은 동의합니다. 자녀들 또한 엄마, 아빠가 좋다면 가겠다고 찬성합니다.
가족은 만장일치 속에 에블린을 떠납니다. 그런데 찌는 듯한 더위에 차의 에어컨은 고장이 나고, 힘들게 찾아간 에블린의 식당은 맛이 형편없었습니다. 2시간이나 걸려 돌아오는 길에 네 사람은 알게 됩니다. 에블린에서 식사하는 걸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죠. 가족들이 좋아하니 따라갔던 겁니다. 결국, 에블린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을 반대하지 않아 동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에블린 패러독스(The Abilene Paradox)'라고 합니다.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맞닥뜨리는 거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겁니다.
#2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월드 워 Z>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세계가 좀비들로 넘쳐납니다. 한마디로 좀비 세상이 된 겁니다. 유엔조사관인 주인공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섭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유일하게 이슬라엘이 좀비로부터 안전하다는 겁니다. 그는 곧바로 이스라엘로 날아가 그곳의 지도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의 나라만 안전한 겁니까?”
지도자가 대답합니다.
“우리에게는 10번째 사람(The Tenth Man)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이스라엘 지도자가 설명합니다. 열 명이 같은 증거를 가지고 어떤 일을 검토할 때 10번째 사람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겁니다. 아홉 명이 동일한 결론을 내리면 어떠한 이유를 대서라도 그 결론이 잘못이라고 한다는 거죠. 그 이유가 뭘까요? 새로운 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홉 명이 내린 결론이 가져올 문제점을 없애고 혹시 모를 어려움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10번째 사람의 의견을 들어 좀비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10번째 사람은 이스라엘의 특유의 집단의사결정 방법입니다. 의무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하도록 하여 만장일치가 가져올 위험성을 없앤 겁니다.
에블린 패러독스에서 패러독스란 역설이라는 뜻입니다. 역설은 어떤 주장이 겉보기에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한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말과 우리글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에블린 패러독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됩니다. 예컨대 회의 중에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생각하여 찬성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 또는 전체 분위기를 위해 양보했는데 말이죠. 누군가가 용감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거죠.
김기섭(세종리더십연구가/ 김기섭토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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