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을 하려면 찬성과 반대로 나눕니다. 보통의 경우 제비를 뽑아 찬성과 반대 중 어느 한쪽을 정합니다. 학생들 중에는 왜 굳이 이렇게 나눠야 하나요, 하고 묻곤 합니다. 억지스럽다는 겁니다. 십분 이해가 갑니다. 토론이 발달한 서양의 정서와 우리의 정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때 에블린 패러독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고개를 끄덕입니다. 만약 가족들이 찬반으로 나누어 토론했다면 힘들게 에블린까지 갈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10번째 사람은 에블린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열 명 중 한사람은 의무적으로 반대하도록 하여 잘못된 합의가 가져올 문제를 사전에 막는 거죠. 현명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10번째 사람은 토론으로 말하면 반대 역할입니다. 무조건 반대편에서 서서 문제점을 꼬집는 겁니다. 찬성 측이 이런 저런 것을 해보자고 제안할 때, 반대측은 안 된다, 중요하지 않다, 시기상조다 등과 같이 찬성측 주장이 실행할 때 일어날 문제를 파헤치는 겁니다.


만약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에어컨이 고장난 차를 타고 에블린을 갔다 오게 될 겁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가 실수하여 1000원을 잃었다고 칩시다. 아깝긴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은 100, 1000억이라면 어떨까요. 이 큰 돈을 잘못 판단하여 잃게 된다면 상상하기도 싫을 겁니다. 토론에서 반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토론이 주는 유익함은 여러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걸 하나 꼽으라면 균형감각을 길러준다는 겁니다. 균형감각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협한 판단을 하지 않는 겁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보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 결정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결국 토론은 우리의 미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그 시작의 문은 10번째 사람이 되는 겁니다. 토론에서 반대다운 반대를 할 때 이루어집니다.


김기섭(세종리더십연구가/ 김기섭토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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