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에세이
누구의 기억에 목매려 하는가



며칠 전 큰형의 호출을 받고 사형제가 여주에 모였다. 내년에 칠순을 맞는 형님이 자신의 신변 정리차 벌초도 하지 않는 할머니 산소를 파묘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요지는 관리를 하지 못할 바에야 없애는 수순을 밟자는 것이었다. 형님은 형님 나름대로 자신이 살아 있을 때 하나씩 정리하려는 의지를 이 참에 내보인 셈이다.
나머지 형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큰형만큼 할머니 산소에 애면글면하는 사람도 없는 데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누구하나 돌보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송구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 할머니 산소는 성가신 존재나 다름없었다. 예전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명절이 되면 벌초도 하고 성묘도 가곤 했다. 비록 한 번도 뵌 적은 없었지만 아버지의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형제들의 머리에 강하게 박혀 있었다. 벌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동안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삼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산소를 찾는 일이 뜸해졌고, 심지어 작년에는 벌초조차 가지 않았다.
사형제가 할머니 산소에 모인 것은 오랜만이었다.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파묘 신고의 예를 올렸다.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 있었다. 형님이 부른 지관과 인부 한 명이 나서서 곧바로 봉분을 깎아내렸다. 순식간에 잔디로 덮여 있던 둥근 형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사토여서 땅을 파는 일은 쉬웠다.
1시간 가까이 파내려가자, 검은흙이 나왔다. 예전에는 모두 탈관을 했기에 검은흙이 나온다는 것은 유해가 가까이 있다는 표시였다. 순간 잔잔한 긴장과 전율이 일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할머니가 73년만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땅을 파는 인부의 손이 조심스러워졌다. 많은 눈들이 인부의 삽을 주시했다. 신중하게 땅을 파내려가던 인부가 구덩이 속에서 앉았다. 손으로 뭔가를 털어냈다. 뼈가 나온 모양이었다. 구덩이 밖으로 손이 올라왔다.
“크기로 봐선 다리뼈 같아요.”
인부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인부의 손에 들린 뼈를 보고 지관도 맞장구를 쳤다. 지관은 뼈를 받아 미리 깔아놓은 백지에 아무렇지 않게 놓았다. 그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뼈에 박혔다. 뼈인지 흙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것이 할머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맞아. 흙과 구분이 안 되잖아.”
누군가 외쳤다. 모두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관이 뼈에서 흙을 발라냈다. 흙은 검고 진했고 뼈는 꼭 나무막대기 같았다. 뼛속은 식물의 줄기처럼 섬유질로 채워져 있었다. 사람 뼈인지 썩은 나무줄기인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인부는 크고 작은 뼈들을 구덩이 밖으로 연신 날랐다. 마침내 기다리던 머리뼈가 나왔다. 모두들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머리가 나오면 다 된 거야.”
지관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머리뼈가 나오면 다 나온 거고, 더 이상 수습할 게 없다는 의미였다. 나는 한 동안 경외로운 마음으로 유골을 보았다. 처음 보는 유골이었다. 천천히 장갑 낀 손으로 돌려가며 만져 보았다. 이렇다할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게감만은 손을 타고 전해왔다. 가벼웠지만 양손에 꽉 들어찼다. 텅빈 속은 섬유질이 무성하게 뻗어 엉켜 있었다.
모두들 나온 뼈를 보며 한 소리씩 했다. 죽는다는 것은 허무하다느니,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게 틀림없다느니 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 말을 들으며 삶과 죽음이 아주 값싸게 도매급으로 팔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불경해보였다. 비록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어 애틋함은 없었지만 이렇게 몇 개의 뼛조각으로 할머니가 설명되는 것이 서글펐다.
곧이어 유해가 불에 태워졌다. 번개탄 위에서 뼈조각들은 특유의 노린내를 풍겼다. 저 아래 깊은 지하에서 묻혀 있던 뼈들이 그새 햇빛에 말라 소리 없이 불을 빨아들였다.
삼십 여분이 지났을까. 조각들은 희뿌연 재로 변했다. 형체는 그대로였지만 손에 들었을 때의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하나 수습된 재를 절구에 넣고 빻았다. 나의 절구질에 조각들은 힘없이 바스라졌다. 푸석, 하는 소리와 함께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빻은 가루를 구덩이 네 구석에 골고루 뿌렸다. 이어 비석을 묻고 다시 흙을 덮었다. 구덩이는 평평한 땅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술 한 잔을 올리고 예를 올렸다. 할머니를 보내는 이 지상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지금보다 더 편안한 곳으로 가시길 기원했다. 이제 여기는 누가 봐도 묘자리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비석도 없으니 더더욱 알 수 없으리라. 이제 할머니라고 부르는 존재는 더 이상 없다.
산소를 내려와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모두들 기분이 홀가분해 보였다. 성가신 애인을 떼어버린 듯한 느낌이 이럴까 싶었다. 더 이상 벌초할 일도 없을 테니 이곳에 올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곳을 지날 때면 생각이 날 것이다. 할머니 산소가 여기쯤에 있었다고.
누가 누구를 기억한다는 건 뭘까. 지금으로선 기억을 한다 해도 큰 가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죽음이 다 그러할 테니. 그것이 영웅의 죽음일지라도.『명상록』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거품 같은 명성은 얼마나 빨리 망각되는가. (---) 너를 찬양할 자들이 있어봐야 얼마나 많겠으며, 그들은 또 어떤 자들이겠는가.”
나는 할머니를 기억할 것이지만 곧 망각할 것이다. 내가 죽는다 해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누군가의 기억에, 허명에 목맬 필요가 있을까.
그 날 이후 삶과 죽음은 나에게 무척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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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