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에세이
죽을 때 우리가 가져갈 것은


영화 <파더>의 주인공 앤소니는 치매환자로 자신이 처한 현실과 기억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현실로 믿게 되면서 혼란을 겪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으며 절규한다. 시간과 공간 구분이 없는 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기에 그의 절규는 더 안쓰럽다. 앤소니로 분한 앤소니 홉킨스는 거장답게 치매환자가 겪는 현실을 사실적이면서도 경쾌하고 심란하게 연기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장년을 넘긴 사람은 어느 누구든 그와 똑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앤소니는 바로 우리가 맞게 될 가까운 미래이므로.
내 아버지는 앤소니처럼 지독한 치매를 앓지 않았다. 대신 위암으로 생을 마쳤다. 아버지가 위가 쓰라린다고 할 때만해도 누구도 암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가족들은 하나같이 충격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아버지를 바깥에서 기다리게 한 뒤 자식들만 따로 진료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위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후통첩을 담담하게 전했다. 삼 개월 가량 사실 거라며.
아버지는 진료실을 나온 자식들의 표정을 보고 짐작했을 것이다. 이미 당신을 남겨두고 의사 말을 들으러 갈 때부터 알았을지 몰랐다. 하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형제들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의견을 나눴고, 결국 알리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전처럼 아버지를 대했고, 아버지 역시 평상시처럼 지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내가 죽은 포목점 김씨와 똑같은 증상이야. 그도 얼마 못 살았어.”
포목점 김씨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 뒤 아버지는 막내의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지켜보았다. 기력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윽고 결혼식이 끝나고 아버지는 그렇게 버티던 줄을 놓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고 본 것이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아버지 집을 들렀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최소한 마지막 소원쯤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혹시 만나고픈 분이 있으세요?”
나의 물음에 아버지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씨가 아직 살아 있을까 모르겠다.”
아버지는 만나고 싶다는 말 대신에 나씨 아저씨의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가 말한 나씨는 우리 형제들에게는 나씨 아저씨로 불렸다. 젊었을 때부터 멋지고 통이 큰 분이었다. 나는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려니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나씨 아저씨를 찾아 나섰다. 20여년 전에 헤어졌고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밀리에 수소문을 시작했다.
마침 아는 경찰 한 분에게 도움을 청했다. 불법이었지만 아버지 소원을 들어드린다는 일념으로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그 분도 나의 진정을 이해했는지, 법을 어기는 일이라는 점을 거듭 밝히면서 들어주었다. 나는 나씨 아저씨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주었다. 아버지와 같은 80대 노인이고, 이름과 20여년 전 경기도 여주에서 살았다는 최소한의 정보를 건넸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경찰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준 정보로 다섯 명을 추렸고, 그중 가장 근접한 분이 대전에 사시는 분이라며 함께 거주하는 아들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나는 거듭거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걸었다.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존함을 대고 아시냐고 물었다.
“알지, 알고말고.”
숨이 가빠오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좋아할 걸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나는 아버지의 병세를 말씀드리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오실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나씨 아저씨는 혼자 갈 수가 없으니 자신을 데리러 오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곧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이 사실을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알렸다. 아버지는 굉장히 놀라워하시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누가 모시러 갈지를 의논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씨 아저씨를 모시는 일은 이렇게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불발이 됐다.
두 분이 만나게 된 것은 아버지가 땅에 묻힐 때였다. 나씨 아저씨는 연락을 받고 장지로 오셨고, 한스럽게 통곡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생전에 만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돌아오는 금요일은 아버지 기일이다. 돌아가신 지 25년이 되어간다. 아직도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생전에 두 분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분명 아버지는 특유의 함빡 웃음을 지으셨을 것이다.
지금,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가. 그렇다면 미루고 망설이지 말자. 우리의 기억이 아직 생생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산다. 그리고 우리가 죽을 때 유일하게 가져갈 것도 사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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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우리가가져갈것은
#명상인류를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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