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활용한 가치토론
이틀 전에 이천 특수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활용한 가치토론 연수를 했다. 그림책을 소재로 토론을 진행할 때 얼마나 유용한지와 한 권의 그림책을 가지고 다양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드리는 자리였다.

내가 선택한 그림책은 <아나톨의 작은냄비> 였다. 특수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연수였기에 현장에서 그들이 접할 수 있는 학생들의 얘기를 담은 그림책이 좋겠다 싶었다. 큰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선생님들이 아나톨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 먼저 작은 냄비를 끌고 다녀야 하는 주인공 아나톨의 어려움에 공감했고, 아나톨이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명랑한 아이로 다시 태어나는데 필요한 아주 중요한 팁들을 새삼 자각하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선생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셨던 것 같다.
<그림책을 활용한 가치토론> 연수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우선 그림책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을 가졌고, 이어서 우리가 읽고 토론할 그림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를 같이 읽었다. 내가 고른 시는 정호승은 <나무에 대하여>였다.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정호승, <수선화에게>(2007)
시는 천천히 두 번 읽었고, 어디에서 마음이 멈추었는지, 밑줄을 긋고 싶은 곳은 어디였는지를 선생님들에게 물었다. 신기한 것은, 얘기하는 선생님마다 다 다른 곳에 밑줄을 그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마음상태에 따라, 평소 어디에 가치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시를 선정한 이유는 우리는 모두 곧은 나무가 되려고 하지 굽은 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하나의 정답이 없음에도 모두가 그 하나, 즉 곧은 길만을 추구하지 않던가. 그러나 사실은 인생길에서 곧은 길만 존재하지 않는다. 곧은 길도 있고, 굽은 길도 있으며, 또 곧은 길 굽은 길이 서로 교차되는 길도 있다. 어떤 분은 굽은 나무에서 장애인을 떠올렸고, 또 어떤 분은 곧은 나무에서는 얻을 수 없는, 눈이 더 많이 쌓이고 새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굽은 나무의 장점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림책을 읽을 때도 시읽기와 마찬가지로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글 위주로 보고, 두 번째는 글과 함께 그림을 살피면서 읽었다. 한 번 읽을 때와 달리 두 번 읽게 되면 내용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림에 담긴 의미를 더 확실히 알게 된다.
그런 다음 내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스톱명상을 잠깐 했다. 이어 손가락 토론지에 담긴 내용들을 적는 시간을 가졌다. 약 5분여 동안 자신만의 솔직하고 진솔한 느낌과 생각,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적는 시간을 주었다. 다 적으면, 엄지손가락을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얘기를 나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나 문제제기가 아니라 공감해주는 것이다. 손가락토론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풍성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때 생각이 넓어지고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면서 나를 채워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런 다음 <토론을 잘하는 비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매년 토론대회 심사위원을 하면서 경험한 토론대회 우승자들의 공통점에 대해 말씀드렸고, 그중 하나인 논리적 사고의 중요성과 방법을 설명했다. 그 예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레오(OREO) 쿠키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방식을 소개했다. 이를 토대로 오레오 가치토론을 훈련했다. 이때의 주제는 <그후 아나톨은 행복할까?> 였다. 아나톨은 그림책 안에서 행복할 수 있었지만 그림책의 밖의 냉정한 현실에서도 그러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만든 논제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아나톨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기대를 전해 주었다. 그러나 이 기대 속에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문화, 시스템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나톨이 행복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분이 없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이 우리 공동체가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이 논제로 커플토론을 했고, 이어서 원탁토론을 진행했다. 앞에서 충분히 얘기를 나누게 되면 원탁토론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내가 정한 논제는 <우리(사회)가 아나톨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가?>이다. 앞서 드러난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토의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시간상 직접 해보지는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한 권의 그림책을 가지고 여기까지 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림책 <아나톨의 작은 냄비>는 매번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이 책을 가지고 토론할 게 뭐 있어, 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다양한 논제가 숨어 있음을 새삼 알게 된다. 토론을 할 수 있는 책은 모두 좋은 책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아나톨의 작은 냄비>도 예외가 아니다. 참고로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은 이 책을 모르고 있었다. 연수를 위해 다행한 일까, 아니면 불운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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