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틱낫한 스님이 어린 승려 시절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스승이 어린 틱낫한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나가서 대나무 막대기를 하나 갖다 주겠나?”
그 말을 듣자 어린 승려는 스승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문도 닫지 않은 채로.
그러자 스승이 틱낫한을 불러 세운다.
“그대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문을 닫지 않았구나. 다시 하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틱낫한은 마음을 집중하고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면서 문 쪽으로 걸어간다. 손잡이를 잡고,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문을 연다. 그런 뒤 깨어있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문을 닫고 숨을 내쉰다. 대나무 막대기가 있는 곳까지 걷는 수행을 한다.
틱낫한 스님은 그날 이후 진정으로 문 닫는 법을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걸 이때 배웠다고 한다. 우리들에게도 이렇게 당부한다. 깨어 있는 마음을 잃어버린 채 다니지 말라고,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큰 고통을 불러온다면서.
지난 1월 세계적인 영적 스승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 스님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일요독서명상에서 멤버들과 스님의 책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위의 이야기는 이 책 7장에 나오는 일화 중 하나다.
많고 많은 스님의 책 중에서 이 책을 고른 까닭은 20여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명상이라는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초보 명상가에게 이 책은 신선하고 강렬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 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우리는 이미 도착해 있다’는 스님의 말씀은 강한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커다란 장군죽비에 등짝을 짝, 소리나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데, 왜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자꾸 떠나려 하는가를 되묻게 해주었다.
그 전까지 나의 삶은 서둘러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는 일과 하나 되지 못한 채 분열과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마음은 미래에 가 있어서 분노와 좌절, 희망과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말을 접하니 머리에 지진이 날 수밖에. 아,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순간 들었고 비로소 표류하던 삶에 마침표를 찍은 기분이었다.
스무 해가 지나 다시 만난 색이 바란 스님의 책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리고 폭 안기는 기분이 들 정도로 편안했다. 스님이 말하는 ‘깨어있는 삶의 예술’을 일상의 삶에서 만드는 수준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지 하는 마음을 더 강하게 갖게 해주었다.
이번에 읽으며 새롭게 다가온 건 스님이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는 메시지였다. 깨어있는 마음, 호흡, 걷기, 미소 짓기가 그것으로,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공통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 진정한 자기의 집임을 깨우치라는 스님의 방법론이다. 그것을 통해 행복과 평화, 기쁨을 우리 속에서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대의 진정한 집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지금 이 순간 푸른 대지 위를 걷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아름다움과 만나는 일이다.”
이러한 평화를 만나기 위해 스님이 제안하는 건 믿음이 아니라 수행이다. 즉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오는 길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명상이다. 스님은 명상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명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의 고통의 본질을 깊이 살펴보는(관찰하는) 일이며, 이로써 고통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이다. 또 매 순간 자각하면서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스님의 명상은 나에게 매순간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깊이 듣고, 깊이 살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스님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하지만 스님의 메시지는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음을 믿는다. 스님의 당부대로 매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깊이 바라보고 자주 멈춤의 시간을 가져보자. 스님은 말했다. 자각은 행복의 근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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