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양시민대학에서 ‘그림책으로 배우는 부모마음공부’라는 강좌를 시작했고, 이번 가을 학기에도 같은 제목으로 강의를 합니다. 지난 수업 때는 주로 젊은 어머니들이 많았고 개중 손주를 둔 할머니 몇 분이 참석을 했습니다. 자녀를 양육한다는 게 수행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에 참석자들 사이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부모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양육패턴을 살펴보는 시간이었지요.

이때 제가 가장, 자주 강조한 말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어떤 자극과 도발(?)을 해오더라도 반응을 바로 하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되도록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그걸 알아차리고 유보하라는 부탁이었지요. 왜냐고요? 그게 바로 부모마음공부의 핵심인 까닭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부모와 자녀가 행복해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극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첫 반응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납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느낌이 일어나고 인지를 토대로 판단을 하게 되지요. 문제는 바로 판단입니다. 부모 자신의 성장과정과 부모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각, 즉 ‘이럴 땐 이러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판단의 잣대가 됩니다. 그런데 이게 매번 옳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불쑥 부모 자신의 무의식적 패턴이 걸러지는 과정 없이 올라오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은 거칠고 투박하기 짝이 없지요. 그래서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특히 화가 날 때 나오는 말은 자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깊은 그늘을 드리우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자극에 대해 반응할 때는 잠깐 멈춤이 필요합니다. 멈추게 되면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만큼 부모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자녀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지요. 좀 더 여유가 있다면 자녀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이는구나,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이렇게 물으면 자녀는 자신의 감정에 공명해주는 부모를 신뢰하게 되고 차분하게 원하는 걸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응이 좋은 점은 부모가 덮어놓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필요가 없게 된다는 거지요. 자극에 대한 반응을 늦추고 판단을 보류했을 뿐인데 부모와 자녀가 깊이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이 사실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가정에서 적용하기 어려워합니다. 제가 만난 어머니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선생님,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돼요.”
“당연하죠. 그래서 알아차림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아동문학가인 코하세 코헤이와 후쿠다 이와오가 100여년 전 윌리엄 란드 리빙스턴의 원작 ‘Father forgets’의 감동을 다시 살려 만든 그림책 《아들아, 아빠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에 나오는 아빠도 하소연하는 어머니들과 똑같습니다. 수강생 어머니들처럼 자신에게 브레이크가 있다는 걸 잊고 삽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매번 야단을 맞아 어리둥절한 채 위축돼 가고, 아빠는 아빠대로 늘 소리치며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 속 아빠는 무뚝뚝합니다. ‘아이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폭군처럼 보입니다. 이른 아침에 늑장을 부린다고 소리치고, 장난감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고 화를 냅니다. 또 식탁에 팔꿈치를 올려놓았다고, 출근할 때 인사하는 자세가 바르지 않다고 잔소리를 해댑니다. 아이가 친구들과 공놀이하다가 달려오니 옷과 신발이 그게 뭐냐며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줍니다. 저녁 잠자리 인사를 하러온 아이에게 무슨 일이냐며 퉁명스럽게 묻습니다.

그렇지만 곧 자신의 행동을 뉘우칩니다. 아이에게 보인 못난 반응을 돌아보며 자책을 합니다. 자신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 놀라면서 가슴을 칩니다.
“아빠는 너를 어른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봐. 잠든 너는 이렇게 작고 어린데 말이야. 아빠는 네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구나. 그동안 너를 너무 아빠 마음대로만 하려고 했었나봐.”

잠자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서 자신을 돌이켜보던 아빠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 동안 무언가를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면서 진짜 아빠,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그림책 속 아빠는 현실 속 아빠와 여러 면에서 닮지 않았나요? 자녀에게 무뚝뚝하게 대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에 인색한 우리네 아버지처럼 말이지요. 십중팔구 우리는 그 옛날 아버지가 하던 대로 자녀를 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라면서 본 부모의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면서 의심 없이 대물림하는 것이지요. 물론 좋은 양육태도는 대물림하는 게 옳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보이는 반응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일입니다. 이 그림책의 부제는 ‘늘 바쁜 아빠가 가슴으로 쓰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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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