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좋습니다. 아침에 듣는 음악은 그야말로 축복입니다. 매끄러운 진행, 아름다운 음악은 신성한 선물입니다. 한 번은 감격에 겨워 아침 7시 진행자에게 감사 문자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알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저녁의 음악은 저녁대로 고혹적입니다. 멜랑꼬리하고 차분한 음악은 깊은 안식으로 이끕니다. 분주한 하루를 정리하는 데 이만한 힐링이 없습니다. 마음이 스폰지가 되어 잃어버린 부드러움을 회복시켜 주니까요.
그렇게 라디오는 거실을 독점하고 공간을 채웁니다. 그것도 온종일, 춤을 추듯 말이지요.
하루는 아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도 없는데 왜 음악을 켜 놓느냐고 말이죠. 화초도 음악을 들어야지, 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아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픽 웃습니다. 우리 집에서 음악은 공기 만큼 친숙합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KBS가 파업을 하면서 방송이 파행을 면치 못했습니다. 재방송 안내 멘트가 프로그램 서두를 장식하고, 재탕 프로그램이 이어집니다. 아침에 듣던 방송이 저녁에 나오고 몇 달 전 방송이 재방송되기 일쑤입니다. 어떨 때는 계절이 다른 멘트가 나오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객원 진행자의 프로그램마저 재방송이 되기에 이르렀을 때는 마음이 착잡하기까지 했습니다.
파업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파행이 길어지면서 얄밉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같은 음악인데 전과 다르게 음악이 기운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생기를 잃은 화초가 이와 같을 겁니다. 지루한 겨울처럼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달랐습니다. 윤기가 흐르고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반갑게도 주인이 돌아온 겁니다. 진행자가 제 자리를 찾은 겁니다. 생방송의 힘이랄까요. 흐르는 음악에서는 온기마저 풍겼습니다.
놀라운 건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선곡 하나 하나 진행자 멘트 하나하나가 마치 봄꽃 같았습니다. 재방송할 때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화사하고 신선한 기운이 느껴진 겁니다. 그간의 우중충함은 더이상 없었습니다.
신비롭고 새로운 세상 ㅡ 음악이 이렇게 다르게 들릴 수 있을까요? 재방송에서 생방송으로 바뀐 덕택일 테지만 마음에 와닿는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본질은 바뀌지 않았지만 음악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마음의 간사함일까요.
그렇다면 이 마음에 속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속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음악이 마음을 산뜻하게 적셔준다면 말이죠.
마음은 참 요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