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자칭 셰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제가 한 음식을 아빠표 요리라며 찾아 주고 아내 또한 은근히 밀어주는 덕분입니다. 그래서 셰프의 권리를 한껏 누립니다. 권리라고 해봤자 음식하고 난 뒤 설거지를 하지 않는 겁니다. 셰프라면 그 정도의 위엄(?)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지금까지 설거지 면제 혜택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다들 바쁘고 힘들면 이 권리조차 써 먹지 못하고 반납할 때가 많긴 하지만요.
얼마전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읽다가, 설거지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나는 그릇과 접시를 깨끗이 닦는, 말 그대로 설거지이고 또 하나는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입니다. 틱낫한 스님은 두 번째 방법을 권합니다.
도대체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란 뭘까요? "설거지를 할 때에 자기가 설거지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설거지를 한 뒤 차를 마셔야겠다, 텔레비전을 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이게 핵심입니다.
"내 숨을 따라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과 내 생각과 내 행동을 죄다 알아차림으로써 완전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하면 "물결 위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병처럼 생각 없이 떠밀려 다니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중심을 잡고 생활하니 망념, 망상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스님의 말을 정리하면, 설거지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길입니다. 살아가는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살고자 하는대로 사는 방법입니다. 설거지할 때만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매사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설거지가 곧 마음 공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