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필요해

얼마나 더 많은 채찍이 필요할까


말을 훈련시키는 조련사에게 말은 네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현명한 말, 똑똑한 말, 부주의한 말, 멍청한 말이 그것이다. 현명한 말은 말 그대로 조련사가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똑똑한 말은 채찍을 들어 보여주는 것만으로 할 일을 찾아 나선다. 부주의한 말은 조련사가 몸에다 채찍을 살짝 건드려줘야 아차, 하고 뒤늦게 깨닫고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멍청한 말은 채찍을 여러 차례 얻어맞아야 비로소 해야 할 바를 안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멍청한 말에 속할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나는 종종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을 한다. 경험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정말이지 지독하고 고약하다. 매번 증상이 똑같지는 않지만 보통 위에서 시작한 위산의 열기가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데, 이때의 느낌이란 독주를 마셨을 때와 비슷하다. 활활 장작불처럼 기세 좋게 속을 태우고 긁어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조기 진화에 실패하면 밑에서 끓어오르는 강하고 쓰라린 열기에 압도당하게 되고, 그럴 때면 은근히 겁도 나고 분노도 인다. 이 고약한 녀석을 불러들인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이란 별 게 없다. 백기투항을 하고 관대한 처분만을 바랄뿐이다. 그러나 위액이란 녀석은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인정사정이 없다. 불에 덴 것처럼 아리게 하고, 부글부글 끓어 넘치게 만들고, 심지어 칼날처럼 날카로운 무언가로 콕콕 찌르기도 한다. 어떤 날은 배 전체가 스트라이크를 벌이는 것처럼 시끄럽고 요란하여 밤을 꼴딱 새게 만든다.  
가급적 이런 귀한 체험은 적극 사양하는 편이지만, 때때로 망각할 때가 있어 문제다. 예를 들어 늦은 저녁 강의를 마친 뒤 기분 좋게 맥주 한 잔을 마시거나, 모처럼 술 먹자고 약속해놓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술자리를 갖는 날, 그래서 1차에 이어 2, 3차를 몰아서 달리는 날은 예외 없이 귀한 체험을 손님처럼 맞이하게 된다. 대개 그런 날은 술을 마셔 기분이 거나해져서그 뒤에 일어날, 엄청나게 후회할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탈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혹독하게 그에 대한 신고식, 즉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그 벌이란 꼬박 두세 시간을 앉아 있거나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눕더라도 비스듬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기본자세를 어기면 영락없이 가중 처벌이 떨어진다. 역류성 식도염이 주는, 앞서 말한 별의별 증상을 다 겪어야 하고 그것도 일방적으로 퍼붓는 폭력에 노출된 채 수모를 당해야 한다. 하여 불타는 배를 끌어안고 원치 않게 불면의 밤을 지새우게 된다. 정말이지, 망각은 자유이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크다.      
물론 이런 날은 내 나름대로 방비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술 먹은 뒤 효소를 바로 먹거나 매실과 양배추 즙을 마시고, 심한 경우 양배추로 만든 일본산 알약 카베진도 먹는다. 이러한 만반의 준비는 때로 증상 감면 효과를 가져다주지만 꼬박 앉아 있어야 하는 벌까지 면제받지는 못한다.
이렇게 벌을 서는 날은 유독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어머니도 역류성 식도염을 오래 앓으셨고, 3년 전 식도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를 빼곤 술도, 과식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 녀석 때문에 고생했다. 나는 이 힘든 과정을 주말 간병인 역할을 하면 지켜보았다.
지금의 스코어대로라면 내가 어머니보다 전조 증상이 빠른 편이다. 어머니는 80대에 들어 이 병을 앓았지만 나는 지금 시작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 고약한 녀석을 어머니보다 빨리 인지했다는 점일 것이다. 관리만 잘 한다면 완치도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타는 배를 끌어안고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일이 잦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더 한심할 수밖에 없다. 구제불능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얼마나 더 많은 채찍을 맞아야 할까. 언제쯤 현명한 말, 똑똑한 말로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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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