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곧 어머니의 기일이 돌아온다. 누군들 다르지 않겠지만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아쉬운 마음과 후회가 밀려온다. 근 20여 년간 아버지 없이 혼자 산 어머니는 외로우셨던 모양이다. 주말마다 어머니 집을 찾아 하룻밤을 자고 돌아가려 할 때쯤이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물었다.
“안 가면 안 되니? 자고 가면 안 되니?”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간절한 바람이 묻어 있었다. 나는 기대하는 바를 모르진 않았지만, 차마 그럴게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어머니는 곧 이해했다. 비록 당신이 그렇게 말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안 것처럼 금세 기대를 접었다. 그런 어머니의 표정이 변하는 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이렇듯 힘든 작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면 어머니는 영락없이 13층 아파트 창문에 나와 있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나를 보고 연신 손을 흔든다. 나도 똑같이 손을 흔들며 어서 들어가라고 외친다. 하지만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가날픈 손짓을 멈춘 적이 없다.
그렇게 어머니 집을 떠나올 당시도, 어머니가 없는 지금에도, 어머니의 부탁에 “그럴까요?” 하며 흔쾌히 들어드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한스럽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애원을 뿌리치고 돌아섰는지 참 몹쓸 아들이지 싶다. 살면서 한 일보다 하지 못한 일이 더 후회스럽다고 하는데, 백번 맞는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는 몫은 누이들이 맡았다.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하고, 나눠 가질 건 나눠 가졌다. 나는 어머니가 보관하던 오래된 작두와 소형 믹서기, 그리고 군자란을 가져왔다.
오래된 작두는 어릴 적 길게 뽑은 딱딱한 가래떡을 썰던 물건이었다. 어머니는 겨울밤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려고 작두에다 가래떡을 넣고 힘 있게 눌렀다. 작두질은 어느 정도 완력이 필요하지만 어머니는 힘든 표정 없이 그 힘든 작두질을 거뜬히 해냈다.
나는 어머니가 썬 얇은 떡을 작두에서 떨어지는 대로 족족 먹어치웠다.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들었지만 당시 세상의 그 어떤 주전부리도 이 맛을 따르지 못했다. 어머니의 작두는 이제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슬었지만 작두를 볼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린다.
소형 믹서기는 식도암을 앓았던 어머니에게 요긴한 물건이었다. 음식을 삼킬 수 없었던 어머니는 스탠스 시술을 받았고 그 후로 모든 음식은 이 믹서기를 통해야 했다.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믹서기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어머니가 드시는 음식은 믹서기로 간 다음 죽이나 미음 형태로 만들어졌고, 그걸 목으로 흘려 넘기는 방식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빈번히 사용하다보니 칼날이 무뎌져, AS센터에서 칼날을 새로 구입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누구도 믹서기를 가져가려는 형제가 없었다. 그래서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새 칼날을 구입하여 끼웠던 것도 나였고, 주말이면 믹서기를 이용하여 식사를 만들어 드렸던 것도 나였다. 그런데 저간의 사정을 모르던 아내가 낡았다는 이유로 내다버렸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군자란은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우던 화초였다. 한 여름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진홍색의 꽃을 피우던 군자란은 어머니의 기쁨이었다. 어머니 손을 거치면 모든 화초가 생기를 되찾았는데, 군자란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거쳐 의연하게 꽃을 피웠다. 덩치도 크고 무겁기도 하여 당초 가져올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 집을 물려받은 동생에게 잘 키워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동생이 바빠서 그랬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 해 겨울을 넘기면서 얼어버렸다. 기다란 잎이 축 늘어지고 색깔도 변색되어 추해졌다.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거실로 들여놓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동생 집에 갈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루는 안 되겠다싶어 군자란을 집으로 가져왔다. 얼어버린 잎들을 가위로 잘라버리자 뿌리만 남은 군자란은 볼품이 없었다. 진홍색의 화려한 꽃을 피워대던 모습을 떠올리면 처참했다. 모두들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고,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틈틈이 물을 주며 지켜보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군자란은 요지부동이었다. 조금의 기미도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한 해가 흘렀다. 우연히 거실의 꽃들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군자란에서 연약한 싹이 솟아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처음에는 삐죽이 싹 하나가 나오더니 곧이어 다른 뿌리에서도 움이 돋고 싹이 나왔다.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가족들을 흔들어 깨웠다.
“오, 이런, 살았어, 살아났다구!”
다른 가족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기적을 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후 군자란은 잎이 진한 초록으로 물들면서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동안 자라지 못한 걸 아쉬워하듯 분갈이를 할 정도로 커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그러나 아직 꽃은 피우지 못하고 있다. 꽃피울 생각을 잊은 듯 무심하다. 그렇지만 나는 기다린다. 진홍색 꽃이 활짝 피는 모습을. 그러면 형제들에게 당당히 말하리라. 어머니 꽃이 피었다고.
누군가의 물건이 소중하다는 건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리라. 어머니의 유품은 내게 소중하다. 그 물건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인생을, 어머니와의 추억을 만난다. 어머니 기일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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