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자기 그림자와 발자국이 두렵고 싫은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그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이렇게 하면 그림자와 발자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발을 들어올리는 횟수가 많을수록, 달리는 속도가 빠를수록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기는커녕 더 찰싹 달라붙었다.

사내는 이렇게 된 게 자신이 느리게 달려서 그런 것이라 믿고 속도를 높였다. 일각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럼에도 그림자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계속 달라붙어서 한시도 놓아주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이 난 사내는 더 이상 힘이 빠져 달릴 수가 없었다. 자리에 쓰러진 사내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사내의 최후였다.

사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유는 자명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늘에 있으면 그림자는 사라진다는 사실, 멈추면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몰랐던 것이다. 그야말로 무지와 무명이 사내를 잡아먹은 괴물이 된 것이다. 이 우화는《장자》의 ‘어부’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내가 참 어리석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달리다가 그늘이 보이면 그것으로 들어가면 되고,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면 자연히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을 텐데 그 뻔한 사실을 모르다니, 아쉬운 마음이 올라올 것이다. 그 당연하고 쉬운 이치를 알아채지 못한 사내가 가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생각할수록 사내는 미욱하다.

그런데 달리는 사람은, 그것도 무언가에 강박적으로 쫓기는 사람은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여유가 없으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전에도 해봤을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게 된다. 오로지 벗어나는 일에만 마음이 쏠려 다른 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시험이 코앞에 닥치거나 원고 마감일이 임박할 때, 또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장자는 그림자와 발자국의 비유를 들어 쉼 없이 살아가는 사내를 풍자했지만 바쁘게 사는 오늘날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만 해도 이 축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한다. 한 가지 일에 필이 꽂히면 죽을지도 모르면서 빛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나방이 되곤 하니까 말이다.

사람마다 사내를 죽음으로 몰아간 그림자와 발자국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돈과 권력일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명예와 사랑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것이 뭐든 간에 쉬지 않고 빠져들게 하는 모든 건 종국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중의 첫 번째가 건강을 잃는 것이다. 건강은 평소에 챙겨야 한다고 주구장창 종교처럼 말은 하지만 정작 질주의 서클에 들어가면 건강을 살피는 일은 사치가 된다. 그런데 그토록 사치처럼 여겼던 건강이 인생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뻔한 후회와 자책의 드라마는 오늘도 매일 방영되고 있다. 모르긴 해도 내일도 인기리에 전파를 탈 것이다.

사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그늘에 들어가거나 발걸음을 멈추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패턴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거나 질주의 서클에서 한 발짝 물러서 멈추는 것이다. 잠시 멈춰서 관성대로 살아온 삶의 패턴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의 선구자인 존 카밧진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의도적으로 잠시 죽는’ 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현재를 위해 자유로운 삶의 시간을 얻게 된다. 존 카밧진의 말을 더 들어보자.

“지금 ‘죽음으로써’ (모든 것들로부터 놓여남으로써) 사실상 지금 더 활발히 살아 숨쉴 수 있게 된다. 멈춤이 해 주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기로 마음먹는다면, 잠시 멈췄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움직임이 될 것이다. 멈춤 덕에 움직임이 더 생생해지고 더 풍요로워지고 더 섬세해진다.”

그림자 사내처럼 무지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무지는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게 한다. 상황이 이러할 땐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 멈춤은 전혀 다른 삶을 보여준다고 하지 않던가. 생생하고 풍요롭고 더 섬세한 삶을 살고 싶다면 때때로 멈추자.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이없는 불행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 

#김기섭의수행이필요해
#장자_그림자사나이
#멈춤의지혜
#존카밧진_마음챙김명상
#참새방앗간
#그림책명상학교


Posted by 통합인문치유자 :